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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순 Apr 27. 2024

그림에 등장하는 이유

소중하고 찌릿한 기억들

나의 글과 그림에서 엄마 못지않게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 있다. 특히 그림에 자주 등장하며 그림책으로도 만든 적이 있다. 바로 우리 할머니다. 그림책에서 엄마와 할머니는 꽤 흔한 소재지만, 사람마다 간직한 사연이 제각각인 만큼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이야기들이다.


얼마 전에 동생과 할머니댁에 다녀왔다. 두 시간이면 가던 할머니 집은 우리가 이사 한 덕에 세 시간 거리로 늘어났다. 평소에는 안부 전화로 자주 못 가는 미안함을 대신하곤 한다. 매달 보내는 물과 간식들이 아직 있는지 확인하고 병원 예약 날짜를 확인한다. 그런데 가끔 할머니에게 먼저 전화가 걸려 올 때가 있다.

핸드폰에 '할머니'라고 뜨면 괜히 가슴이 철렁한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무심한 손녀들의 안부가 궁금해 전화를 걸어봤다고 하며 웃으신다. 우리가 찍어놓은 사진들을 매일 들여다보시며 말을 걸어본다고 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 말에 어찌나 죄송하던지 만사를 제쳐두고 할머니네로 달려갔다.


우리는 간식을 잔뜩 사들고 할머니네 도착했다. 짐을 풀기도 전에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자장면을 시켜 먹고 배를 두드리며 나란히 누었다. 할머니는 오랜만에 온 손녀들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셨다. 나는 문득 할머니에게 원래 자장면을 좋아하셨는지 물었다.

"그럼 원래 좋아했지. 특히 요즘 제일 맛있어."

내가 물어본 이유는 자장면을 시켜 먹을 때마다 예전 생각이 나서다. 

초등학생 시절, 어느 날 자장면이 먹고 싶다고 하니 할머니께서 자장면 한 그릇을 시켜주셨다. 한 그릇은 원래 배달을 잘 안 해준다던 배달원과 자장면 비닐을 벗겨주던 할머니의 모습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할머니는 내가 자장면 먹는 모습을 지켜만 보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god의 어머님께 노래 가사처럼 자장면을 싫다고 하셨지만, 할머니는 원래 나만큼이나 자장면을 좋아하셨던 거다. 요즘엔 이가 좋지 않으셔서 아무리 좋은 고기와 보양식을 사다 드려도 자장면이 제일 맛있다고 하실 정도다.


이번에도 우리는 할머니와 맛있게 자장면을 먹고 밀린 이야기를 들었으며 망가진 의자 대신 튼튼한 의자를 사드리고 왔다. 이제야 비로소 할머니에게 받았던 사랑을 돌려주는 시기가 온 것이다. 또 그럴 수 있어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림 속 우리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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