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보통 스팸 메시지가 많이 와서 잘 읽지 않는데 이번에 조금 다른 내용이었다. 그림전시를 기획 중인데 참여 의사를 묻는 내용이었다.
그림 전시라니. 전시를 하는 많은 작가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꼭 해보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만 했었는데 뜻밖에 좋은 기회였다. 그동안 전시에 참여하려면대관료라던지 어느 정도 비용을 내야 한다고 들어서 나중으로 미뤘던 터였다.
일단 참여 의사를 듣고는 담당자를 연결해 주셨다. 내용은 가을 기획 전시를 준비 중이었고 작가를 섭외 중이라고 했다. 내 그림이 기획 주제와 잘 맞다며 함께 해보자고 하셨다.
그때 한창작업 마감 중이라 틈이 없었지만, 놓칠 수 없기에 하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나의 첫 전시 준비가 시작됐다. 그림만 있으면 될 줄 알았는데 기획 단계에서부터 작가의 참여가 참 많았다. 그림의 콘셉트, 작가의 말, 작업 의도 등 관람자의 입장에서 볼 때 친절한 설명이 필요했다.
그다음은 예산에 맞춰 액자도 준비해야 했다.
정해진 예산에 들어오면서도 내 그림과 잘 어울리는 형식을 찾아보았다. 손그림 느낌의 따뜻한 분위기를 가진 내 그림들은 아무래도 일반 액자보다는 캔버스형 액자가 잘 어울렸다. 가격대는 조금 있었지만, 적절한 투자였다.
캔버스에 인쇄될 그림을 업체에 넘기면서 자잘한 수정을 거쳤다. 어느 하나 내 손이 가지 않는 게 없었다. 만약 내가 직장인이었다면 이렇게 온전한 투자를 할 수 있었을까?이럴 때는 스케줄 조절이 가능한프리랜서라서 좋다. 전시 시작 이틀 전 업체에서 액자를 배송 완료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제 나의 그림이 잘 설치되길 바라며 전시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대망의 첫 전시 날. 친한 친구가 처음으로 보러 와준다고 해서 전시장에서 만났다.
100평 남짓한 넓은 공간. 나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를 함께한 다른 작가님의 그림들과 내 그림들로 둘러싸인 전시장이 새롭게 느껴졌다.
그림 옆에는 머리를 쥐어짜며 적었던 그림 소개글이 벽면에 프린팅 되어 있었다. 그림만 있었다면 넓은 공간이 자칫 허전해 보였을 텐데 잘 어울렸다.
처음으로 그림과 글의 시너지를 느낀 순간이었다. 늘 그림만으로 감정을 나타냈는데, 작가의 의도와 생각이 담긴 글이 함께 있으니 더 친절하고 정확한 느낌이었다. 앞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짤막한 글이라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8일 간 진행됐던 전시는 가족, 지인들의 고마운 방문이 이어졌다. 친한 친구들, 그동안 연락을 자주 못했던 지인들까지. 전시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와주었다. 진심이 담긴 축하와 예쁜 꽃다발은 정말 선물 그 자체였다. 그림을 그리는 게 이렇게 좋은 거였나? 나는 그저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그렸고, 가끔은 내 감정이 드러나는 그림이 부끄럽기도 했는데, 새로운 감정을 느꼈다.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 중 제일 기뻐한 건 엄마였다. 당사자인 나보다 좋아해서 열심히 준비한 보람을 느꼈다. 엄마는 일 때문에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친구들과 전시를 관람했는데,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고 했다. 친구분들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엄마의 어깨가 한껏 올라간 하루였다.
엄마가 신나 하면 전해준 얘기가 있는데, 그날 전시장에 다른 관람객분이 내 그림을 급하게 찍고 계셔서 엄마가 아는 척을 했나 보다.
그분은 엄마에게 그림 작가님이시냐고 물었고, 엄마는 딸이 그렸다고 말을 건넸다.
그 얘기를 듣고 그분은 아까 전시를 보고 갔는데 사진을 안 찍고 가서 다시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림이 참 따뜻하고 좋아서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며 그렇게 그림을 담아가셨다.
얼굴도 모르는 그분께 감사함을 느낀다. 내 그림이 작은 위로와 힘이 되어 준다면 작가 입장에서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다. 공감을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게 나의 목표이자 희망이다.
그렇게 첫 전시는 무사히 마쳤고, 전시장에 걸려있던 내 그림들은 집으로왔다. 이 커다란 그림들이 구석에 잠들어 있는 게 그래서 감사의 마음을 담아주변 사람들에게 몇 점 선물했다. 행복은 나눌수록 좋은 거니까. 내 그림이 잠들어 있는 것보다는 새로운 공간을 채워줄 수 있다면 나한테도 좋은 거다. 아직 남은 그림들이 미래의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