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겸 나만의 공간을 갖기 위해 독립했던 몇 년 전. 혼자 산다는 사실에 들떠 6평 남짓 좁은 오피스텔도 마냥 좋았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공간을 꾸미기 시작했다. 좁은 공간에서 언제든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최적의 동선을 고민하고 작업 공간을 만들었다. 실제로 일을 가장 활발히 했던 시기였다. 내가 일하고 싶은 만큼 일하고 늦게까지 불을 켜 놔도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다. 온전히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시간. 30살이 되어 느껴보는 자유였다.
그러나 너무 신이 났던 탓일까. 프리랜서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 관리 루틴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일이 갑자기 몰리다 보니 자는 시간, 일어나는 시간이 들쑥날쑥 이었고 바빠서 식사도 건너뛰기 일수였다. 일단 들어오는 일이 우선이라 정작 나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체력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느낀 건 심한 감기 몸살로 꼼짝할 수 없었을 때였다. 집이었더라면 엄마가 잔소리와 함께 약이든 뭐든 챙겨줬겠지만 이제 나는 혼자였다. 내 마음을 아는지 마침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를 큼큼 가다듬었다. 딸의 미묘한 변화도 알아차리는 게 엄마다. 혼자 나온 이후로 늘 걱정이 가득한데 더 큰 걱정을 보태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단박에 알아챘다.
"엄마가 옆에서 챙겨줘야 하는데. 지금 갈까?"
먼 거리를 금방이라도 오겠다는 엄마를 말렸다. 밀린 잔소리를 한 바가지 듣고 나서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갔다. 엄마가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죽 레시피를 알려주었다. 평소라면 귀찮아서 사 먹었겠지만, 엄마의 마음이 느껴진 탓에 대충 때울 수가 없었다. 엄마가 알려준 대로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찬밥을 넣고 계란을 톡 까서 휘휘 저어 계란죽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참기름까지 넣으니 그럴듯했다. 내가 만든 죽을 한입 먹었다. 후후 불어 뜨는 한 술에 익숙한 맛이 났다. 수십 년을 넘게 들은 잔소리 레퍼토리처럼 내 입맛도 엄마의 요리에 익숙해진 모양이다.
죽을 다 먹고 아이스아메리카노 대신 따뜻한 국화차를 준비했다. 뭐라도 먹으니 조금 기운이 돌았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먹기 전에 찍었던 죽 사진을 보내주며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밥도 거르지 말고 아플 것 같으면 미리미리 약 챙겨 먹으라는 엄마의 잔소리. 멀리 떨어져 있으니 잔소리도 그리웠나 보다.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엄마를 볼 때면 딸들에 대한 걱정이 지나치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은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옆에 없으면 걱정되고 또 보고 싶은 건 엄마도 마찬가지겠지?
독립한 딸 집에 들를 때마다 장을 봐와서 반찬을 만들고, 어설픈 살림살이를 말끔히 정리해 놓고야 돌아가는 우리 엄마. 나름 한다고 해도 엄마 눈에는 그저 소꿉장난하는 어린아이로 보일 것이다. 아직은 엄마의 손길이 좋은 미운 30살. 오늘하루 오랜만에 엄마가 다녀간 느낌이다. 몸이 괜찮아지면 엄마가 해줬던 대로 청소와 정리를 다시 해봐야겠다. 곳곳에 남아있는 엄마의 흔적을 따라 나도 그렇게 살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