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건물 옥상에 작은 화단이 있다. 이사하고 처음 봤던 화단은 오랫동안 가꾸지 않았는지 잡초가 무성했다. 그런 화단을 보고 엄마는 텃밭을 만들어야겠다며 좋아했다. 엄마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화단을 작은 텃밭으로 가꾸기 위해 꽤나 공을 들였다. 시장에서 씨앗을 잔뜩 사 오고, 잡초를 정리하며 봄부터 여름까지 엄마의 화단 만들기는 계속되었다.
나도 몇 번 따라가 보기는 했지만, 그 강한 뙤약볕을 견디기 힘들었다. 특히 한여름에는 5층까지 올라가는 게 귀찮아 엄마가 몇 번 가자고 하는 것도 모른척했다.
"엄마 대충 해. 날이 이렇게 더운데."
"날이 이렇게 뜨거운데 걔네는 얼마나 덥겠니?"
엄마는 어디선가 흙도 얻어오고 영양제도 사 오고 화단을 열심히 가꿨다. 감정표현이 풍부한 엄마는 꽃이나 식물에 말을 걸곤 했다. 엄마는 그렇게 작은 텃밭 가꾸기에 매료되었고, 힘든 줄도 모르고 5층을 왔다 갔다 했다. 엄마의 표정이 밝아진 게 언제부터였을까? 언젠가부터 엄마는 무언가를 들고 내려왔다.
"이거 봐. 호박이 어찌나 싱싱한지."
"고추는 너무 많아서 감당이 안 될 지경이다 호호."
우리 집 식탁에 텃밭에서 나온 작고 투박한 식재료들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신선한 식재료가 되어주었다.
하루는 엄마가 따온 오이를 얻어먹고 있는데 엄마가 같이 가자며 나를 꼬셨다. 평소라면 온갖 핑계를 대고 안 갔을 텐데 그날따라 호기심이 들었다. 내가 봤던 옥상에서는 이런 게 나올 리가 없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했다. 아직 날이 더운 9월 엄마를 따라 옥상으로 올라갔다. 거기에는 오이들과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들,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하는 깻잎들이 가득했다. 엄마는 잡초를 뽑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깻잎과 고추를 땄다. 잡초뿐이던 화단이 엄마의 손길로 근사한 텃밭이 되어 있었다. 그날 직접 딴 깻잎과 호박무침으로 비빔밥을 해 먹었다. 역시 공짜로 얻는 건 없다고 일을 거들고 먹는 밥맛은 꿀맛이었다.
엄마를 보면 가끔 신기하다. 내가 봐온 엄마는 30년 정도인데,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 속에 엄마는 훨씬 많은 일을 경험했고, 그만큼의 지혜를 갖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건데 이럴 때마다 엄마가 달라 보인다.
앞으로 엄마가 잘 모르는 컴퓨터, 은행이체 같은 걸 도와줄 때 귀찮아하지 말아야지. 우리 엄마는 내가 능숙하게 다루는 컴퓨터보다 훨씬 근사하고 멋진 삶의 지혜를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