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순 Feb 17. 2024

엄마의 운전

도전하는 당신이 아름답다


몇 년 전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한 준비를 막 시작하기 전이었다. 그때의 나는 취업과 그림을 두고 갈등하는 중이었다. 그림 연습만 하다가 시간만 흐르면 어쩌지? 모두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중인데 나만 아직도 태평하게 꿈을 좇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속 불안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모 아니면 도라는 답을 내리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기를 며칠째. 엄마의 방이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생각해 보니 요즘 엄마는 방에 들어가면 통 나오지 않았다.

"엄마 뭐 해?"

엄마는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이는 내 노트북. 엄마에게 노트북을 빌려줬던 게 생각이 났다. 요 며칠 컴퓨터에 대해 질문을 던지더니 컴퓨터 자격증을 딸 거라고 했다. 컴퓨터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던 엄마의 공부가 퇴근 후까지 이어진 것이다. 피곤해 눈이 반쯤 감긴 엄마를 보니 몇 년 전 엄마의 첫 도전이 떠올랐다. 




51세. 엄마는 갑자기 운전이 하고 싶다고 했다. 각자 일에 바쁘던 자식들은 그 엉뚱한 다짐을 이내 잊어버렸다. 여느 때처럼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는 문제집을 사더니 필기시험을 준비했고, 시험을 봤다. 필기 합격 뒤에는 실기 시험을 위해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운전면허 연습장에 들렸다가 출근했다. 

그렇게 면허를 따기 위한 엄마의 여정은 몇 개월간 계속되었다. 운전도 일도 포기할 수 없던 엄마는 그렇게 자기와의 도전을 이어나갔다. 어떤 날은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할 수 있다'란 말을 여러 번 외치고 일어났다고 했다. 그때 엄마의 새로운 면에 놀라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냐고 물었었다.

"그러게.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그냥 운전이 너무 하고 싶었어."

결국 엄마는 운전면허를 손에 넣었고 중고차를 구입해 몇 년 간 잘 타고 다녔다. 엄마의 차 보조석에 처음 탔던 날을 잊을 수 없다. 내가 몰랐던 엄마의 모습과 담대한 운전 실력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때를 떠올리니 그녀의 새로운 다짐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엄마에게 내일부터 컴퓨터를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한시름 놓았다며 좋아하는 엄마를 보니 그동안 얼마나 무심했는지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또 다른 도전을 앞둔 엄마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며 잘 될 거라고 했다. 그건 엄마에게 보내는 응원이자 동시에 나에게 보내는 응원이었다. 정말 해내고 싶은 일이라면 나에게도 숨어있던 힘이 솟아날지 모르니까. 




이전 10화 커피를 배우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