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순 Jan 27. 2024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걸 해봤더니

좀 더 뻔뻔해지자

누군가 그랬다.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걸 시작하라고. 늘 살던 대로 살면서 삶이 달라질 수는 없다고. 삶의 변화를 원하던 나에게 딱 맞는 문구였다.

나는 나를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나를 소개하는 것이 부끄러웠고, 모르는 사람들이 내 얘기를 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스스로 홍보하고 인맥을 넓혀야 하는 프리랜서에게는 꽤나 어려운 성격이다. 


지금으로부터 8-9년 전, 20대 초반에 미술 학원을 다니면서 일러스트레이터를 준비하던 시기였다. 미술 학원 원장님은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아남으려면 어디든 나를 알리고 내 그림을 스스로 홍보해야 한다며 블로그든 홈페이지든 뭐든 시작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만들게 된 나의 첫 블로그. 그 흔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도 하지 않던 나에게 블로그는 그나마 좀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지인들을 찾아주는 SNS보다는 나를 모르는 곳에서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성향에 맞지는 않지만, 뭐라도 해야 했기 때문에 그림도 올리며 나름 블로그에 차츰 정을 붙여가던 시기였다. 


문제는 몇 개월 후에 일어났다. 친척들이 다 모인 자리. 큰 이모와 사촌 동생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어머, 네 블로그 잘 보고 있어. 그림 멋지더라.” 

이럴 수가. 알고 보니 엄마가 딸 자랑을 한다며 내 블로그를 친척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소심하고 부끄럼 많던 나는 그날 이후로 블로그에 손을 떼게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극단적인 결정이 아닐 수 없다. 뭐가 그렇게 싫고 부끄러웠을까? 그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내 일상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부담이 컸다. 아무리 그래도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겠다면서 그림을 꽁꽁 숨기면 어디서 의뢰를 받겠다는 건지. 결국 그때의 나는 열심히 그림을 그리지도 홍보를 기가 막히게 해내지도 못한 채 일러스트레이터 생활을 이어가지 못했다.






30대가 된 지금의 나는 조금 달라졌을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좋은 점이 있다면 다양한 경험들로 다져진 뻔뻔함이 아닐까 싶다. 무척이나 춥던 12월의 어느 주말. 프리랜서들이 모이는 연말 파티에 참석했다. 연말 파티라니. 나와는 참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늘 똑같은 생활, 익숙한 환경을 좋아하는 내가 자발적으로 신청을 해서 참석하게 된 자리였다.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일. 신선한 자극.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늘 그렇듯 집에 있었다면 따뜻하고 고요하게 보내는 하루였겠지만, 그곳에서 어떠한 인연을 만날지 몰랐다. 새로운 걸 시도하는 그 자체로 뿌듯하고 의미 있는 하루가 될 것만 같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새로운 분야의 사람들, 처음 가본 장소, 현직자가 들려주는 다양한 직업의 세계까지. 세상에 수많은 프리랜서가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도 혹시 몰라 챙겨갔던 그림들과 명함을 건네며 나라는 사람을 소개했다. 내 생각보다 사람들은 호의적이고 친절했다. 걱정하던 일들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걸 시도해 본 그날. 나에겐 기분 좋은 도전이었고, 새로운 경험의 시작이 되었다. 

어쩌면 나. 사람들 만나는 걸 좋아할지도?


이전 08화 혼자라서 좋은 여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