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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순 Jan 20. 2024

혼자라서 좋은 여행

나를 돌아보는 시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겨울은 여행의 계절이었다. 손끝이 시리고 찬바람에 코를 훌쩍일 때쯤 낯선 곳으로 떠나곤 했다. 첫 혼자 여행의 시작은 부산이었고, 나는 21살이었다. 꼭 가보고 싶었던 부산의 아름다운 바다를 상상하면서 여행 날을 기다렸다. 엄마의 걱정을 뒤로하고 짐을 야무지게 챙겨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여행의 목적은 내년의 나를 위한 쉬어가기. 미술 학원비를 모으느라 열심히 아르바이트했던 나에게 휴식을 주고, 내년에 힘차게 달릴 스스로를 북돋아 주는 여행이었다. 


처음 본 부산의 바다는 눈이 부셨고, 갈매기들이 참 많았던 기억이 난다. 첫 여행지를 기념하기 위해 부지런히 카메라에 풍경을 담았다. 깡통시장에서 국수를 먹고 씨앗호떡까지 야무지게 먹으며 시장을 천천히 구경했다.

여행지에서의 시장은 또 달랐다. 일상 같던 시장의 풍경도 여행자에게는 추억으로 담겼다. 그렇게 하루종일 부산의 거리를 걷다가 추운 몸을 녹이려 숙소로 향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미리 예약해 두었던 작은 비즈니스호텔이었다. 짐을 내려놓자마자 따뜻한 티를 한잔 만든 다음 욕조에 몸을 담갔다. 고요하고 따뜻한 방에 오니 긴장이 풀렸고, 비로소 혼자인 게 실감이 났다. 가족들과 북적이며 지내던 집을 떠나 낯선 숙소에서 보내는 이 순간. 어쩌면 내가 여행을 하고 싶어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부산에서의 여행은 대체로 좋았다. 부끄러움을 이기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해 얻어낸 독사진. 친절하고 열정적이게 사진을 찍어주던 아저씨의 모습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이렇게 여행에서 좋았던 기억들이 다음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혼자라는 두려움은 점차 줄어들었고, 그렇게 국내에서 첫 해외여행까지 떠나게 되었다.


지나온 여행들이 전부 기억나지는 않지만, 조각조각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하루종일 걷고 와서 뜨듯한 욕조 안에 몸을 담갔던 부산 여행. 숙소에 가기 위해 탔던 택시에서 기사님과 도란도란 나누던 대화. 우연히 엄마에게 딱 맞는 선물을 발견해 기뻤던 일본 여행 등.

그 지역에 특색이나 풍경도 좋았지만, 어째서인지 저런 사소한 기억들이 더 강렬하다. 여행지에서 찾은 반가운 흔적들이다.


최근에는 여행을 가지 못했다. 일하고 공부하면서 바쁘게 지내다 보니 그런 여유로운 여행은 잊고 지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혼자 여행을 떠났던 게 복잡한 생각과 미래의 대한 걱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무거운 고민에서 한 발짝 떨어져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건지. 또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지 그려보는 시간. 그때나 지금이나 미래의 대한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지치면 쉬어갈 수 있는 나만의 처방법을 알기 때문에 큰 걱정은 되지 않는다. 언제라도 힘들면 다시 겨울 여행을 떠나기로 다짐해 본다. 2024년을 열심히 살아갈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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