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작을 함께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의뢰가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 그림을 찾는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신기하고 감사한 일인지. 신이 나서 몇 번씩 메일을 열어보았다. 그러나 고민거리도 생겨났다. 색연필이 가진 특유의 질감과 느낌을 좋아하지만 빠르게 작업하기가 쉽지 않았다. 종이에 바로 채색을 하기 때문에 수정이 까다롭고 채색 작업 후에는 스캔과 보정 작업을 필수로 거쳐야 했다. 혹시 색을 바꾸려면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했기 때문에 초보 작업자 입장에서는 꽤 어려운 난관이었다.
그쯤 나의 작업 도구는 색연필에서 아이패드로 넘어갔다. 디지털드로잉을 해본 적이 없었고, 수익도 거의 없던 나는 아이패드에 거금을 투자했다. 그리고 지금의 손그림 느낌의 아이패드 드로잉이 탄생했다. 원활한 외주 작업을 위한 나의 커다란 선택이었다. 이제는 색연필을 자주 사용하지 않지만, 지금도 내 그림과 가장 잘 맞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색연필을 사용할 땐 긴장이 되지만 마치 그림을 처음 시작할 때의 떨림처럼 느껴진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었던 취미가 직업으로 바뀌는 순간 어쩔 수 없는 갈증이 생기곤 한다. 더 이상 가볍게 즐길 수 없으며 때론 원하지 않는 그림을 그려야 하기도 한다. 그럴 땐 색연필로 내 마음대로 그려본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그림. 선이 삐뚤어지지 않을까, 색이 어울릴까 고민하지만,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설레는 시작을 함께해 준 고마운 존재다.
여전히 내 책꽂이에는 150색의 알록달록한 색연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어떤 그림을 그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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