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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순 May 04. 2024

슥슥 삭삭 색연필 이야기

첫 시작을 함께

나의 첫 일러스트는 색연필로 그린 그림이었다. 일러스트 과정을 배우면서 아크릴, 수채화, 색연필, 펜드로잉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해 보았다. 그중 내가 선택한 재료가 색연필이었다. 색연필이 가진 따스한 질감과 감성이 내가 그리고 싶은 주제와 어울렸다. 색연필은 손에 힘을 빼면 한없이 부드럽고, 힘주듯 꾹꾹 눌러 칠하면 또 그것만의 매력이 있었다. 나는 힘을 주어 칠하는 게 좋았는데 색연필로 가득 찬 느낌과 덧대어 그리는 게 좋았다.

본격적인 작업을 위해서 색연필 150색을 구매했다. 초등학교 때는 24색, 미술학원에서는 72색이었는데, 결국 원하던 150색을 갖게 되었다. 10만 원이 넘는 가격이었지만 그만큼 예쁜 색깔이 가득했다. 어쩜 하나같이 색이 고운지 그림과 가장 어울리는 색을 고르는 것도 큰 재미 중 하나였다. 


색연필 그림을 그리며 본격적인 홍보 활동에 들어갔다. 우선 업로드할 그림을 여러 장 완성한 다음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주기적으로 업로드했다. 1일 1 그림은 힘들어도 일주일에 3번은 올릴 수 있게 부지런히 그렸다. 역시 내가 추구하는 따뜻한 감성과 색연필과 잘 어울렸다. 초반에는 다음 그림은 뭘 그려야 하나 고민이었다면 나중에는 연결된 이야기처럼 그리고 싶은 주제가 마구 떠올랐다. 의뢰를 받기 위한 포트폴리오 작업이었지만, 개인 작업이기 때문에 내 취향으로만 가득 담아 그렸다. 지금 그때의 그림들을 보면 그때만의 감성이 보인다. 가장 재밌게 작업했고, 조금 부족해도 꾸미지 않은 따뜻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의뢰가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 그림을 찾는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신기하고 감사한 일인지. 신이 나서 몇 번씩 메일을 열어보았다. 그러나 고민거리도 생겨났다. 색연필이 가진 특유의 질감과 느낌을 좋아하지만 빠르게 작업하기가 쉽지 않았다. 종이에 바로 채색을 하기 때문에 수정이 까다롭고 채색 작업 후에는 스캔과 보정 작업을 필수로 거쳐야 했다. 혹시 색을 바꾸려면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했기 때문에 초보 작업자 입장에서는 꽤 어려운 난관이었다.


그쯤 나의 작업 도구는 색연필에서 아이패드로 넘어갔다. 디지털드로잉을 해본 적이 없었고, 수익도 거의 없던 나는 아이패드에 거금을 투자했다. 그리고 지금의 손그림 느낌의 아이패드 드로잉이 탄생했다. 원활한 외주 작업을 위한 나의 커다란 선택이었다.  이제는 색연필을 자주 사용하지 않지만, 지금도 내 그림과 가장 잘 맞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색연필을 사용할 땐 긴장이 되지만 마치 그림을 처음 시작할 때의 떨림처럼 느껴진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었던 취미가 직업으로 바뀌는 순간 어쩔 수 없는 갈증이 생기곤 한다. 더 이상 가볍게 즐길 수 없으며 때론 원하지 않는 그림을 그려야 하기도 한다. 그럴 땐 색연필로 내 마음대로 그려본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그림. 선이 삐뚤어지지 않을까, 색이 어울릴까 고민하지만,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설레는 시작을 함께해 준 고마운 존재다.

여전히 내 책꽂이에는 150색의 알록달록한 색연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어떤 그림을 그려볼까?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을까?

그리고 싶은 대로 그렸던 색연필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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