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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 Jan 19. 2017

위풍당당 캣초딩

그러니까 고양이지

아기고양이는 똥꼬발랄하다.

눈만 뜨면 호기심 천국, 지치지 않는 에너자이저, 언제나 부릉부릉.

활동량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아 사고를 많이 치는 아기 고양이들을 캣초딩이라 부른다.

오늘은 우리집 캣초딩과 투닥거리는 이야기.


고맙게도 온순한 편인 우리집 고양이는 물건이나 가구를 망가뜨리진 않았다.

굳이 망가뜨린 걸 찾자면 휴지 정도? 하지만 아깽이가 있는데 휴지를 바닥에 둔 집사의 잘못이지.


우리집 캣초딩이 두루마리 휴지와 치열하게 놀고 난 후. 고양이 잘못이 아니야. 바닥에 휴지를 두고 간 집사의 잘못이지.


식탐이 많은 우리 집 고양이는 물건 대신 먹을 것들을 종종 탐했다. 지퍼백 같은 비닐봉지에 담긴 먹거리를 꺼내놓고 가면 봉투를 탈탈 털어 먹으며 셀프 간식 타임을 가진다.

멸치, 북어, 먹태, 치즈, 유과, 캣닢 등등을 털어 먹고 모른 척, 내가 안 그런 척.

가끔은 빈 간식 캔 냄새에 홀려 재활용 쓰레기를 뒤집어 놓고도 모른 척, 안 그런 척.


봉지에 넣어둔 간식을 탈탈 털은 현장 사진
모르는 일이다. 기억나지 않는다.

한 번은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평소에는 사고를 치고 나서도 당당하게 와서 어서 치우라고 잔소리를 해대는 녀석인데, 이상하게 풀이 죽어 있었다.

우다다치곤 격하게 구르고 파고든 흔적들, 저 멀리 나뒹구는 물그릇.

이상하다 싶어 집안을 둘러보는데, 웬걸, 이 녀석.

얻어놓은 햇고춧가루를 뜯어서 먹었다.

아, 아, 아....

고소한 냄새가 나지도 않고, 평소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안심하고 봉투째 올려놨었는데 어쩜 그걸 뜯어먹었다.

뜯긴 고춧가루 봉투와 저 멀리 홈런을 쳐놓은 물그릇을 보고 먹고 얼마나 놀라고 괴로웠으면 이 난리를 피웠놨을까 짠하기도 하고, 혼자 폭주했을 모습이 그려져 엄청 웃었다.

집사가 깜빡한 것 같아서 내가 미리 뜯어났다. 감사인사는 됐어. 넣어둬~


처음에는 고양이가 사고를 치면 혼을 냈다.

큰소리도 내보고, 코도 튕겨보고, 범죄 현장에 데려가서 야단을 쳤다.

혼이 나면 녀석은 때로는 큰소리로 대들듯 야옹거리고, 때로는 풀이 죽어 눈치를 보고, 때로는 토라진다.

어느 날, 야단을 맞고 삐쳐서 구석에 가 있는 고양이를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얘가 뭘 잘못한 건지 알긴 할까.
애당초 고양이가 잘못한 일인 걸까.
고양이 손이 닿는 곳에 물건을 놓아둔 나의 잘못 아닐까.

내가 그곳에 두지 않았다면, 고양이가 호기심에 물어뜯거나 먹을 일이 없었을 텐데.

왜 제대로 치워두지 않고 애꿎은 고양이만 혼냈을까.


그래서 요즘은 집을 비운 사이, 내가 잠든 사이 무언가 몰래 먹은 고양이를 혼내지 않는다.

대신 웃으면서 그곳에 그것을 둔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다, 웃으면서 치워준다.

단, 현장 검거 시에는 바로 응징! 지이이잉!


이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나는 더 이상 고양이가 어질러놓았다고 화를 내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고양이가 달라진 점은, 음, 음, 글쎄.

아! 이제는 고양이가 혼나고 나서 토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혼나고 나면 괜스레 한번 더 애교를 부리고 안긴다. 현장 검거를 당하니 스스로 잘못한 걸 아니까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


당연하겠지만, 내가 미안해하고 물건 정리를 더 잘해놓는다고 고양이가 사고를 치지 않는 건 아니다.

고양이는 언제나, 그럴 소재가 있다면, 집사가 틈을 만들어놓는다면 언제나 집을 어질러놓고, 물건을 망가뜨려놓고, 집사를 위한 일감을 만들어둘 것이다.


고양이니까.

그리고 그것을 치우는 것은 집사의 숙명.


당연하잖아-

그러니까 고양이지.


냐앜 집사 메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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