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고 싶은 욕구
퇴사를 한 지 여러 달이 지났다. 직장인의 꿈의 단어. 퇴사.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찬 그 단어. 이직이 아닌 퇴사. 막상 퇴사를 하고 보니 내가 하려던 건 퇴사 후 펼쳐지는 '생각만 해도 설레고 미소가 지어지는 일상'이 아닌 퇴사 그 자체였던가. 생각해 본다. 뒷 일은 반년 후쯤 나에게 던져두고, 어떠한 계획도 없이 퇴사하는 그 모습이 '쿨함'으로 보였던 것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그렇게 퇴사를 했다.
높은 곳에 오르면 떨어지고 싶다.라는 추락 욕구가 생겨난다. 내가 느끼는 고소 공포증, 높은 위치에서 느끼는 엄청난 불안감은 어쩌면 추락에 대한 욕구의 반증일지도 모른다. 한강 위에서 다리 밑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그대로 떨어지고 싶다. 삶을 포기한다거나 뼈 한 두 개 부러트리고 싶은 그런 무시무시한 충동은 아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현기증과 추락 욕구에 대한 구절이 나올 때, 어찌나 반가웠던지. 현기증, 그건 적어도 내 20대 인생을 어느 정도 대변하는 증세였다.
음. 다시 생각해 보면 추락이 아니다. 원래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회귀 본능이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그 자리, 그 안정감에 대한 갈망. 두 다리를 땅에 딛고 있지 않으면, 바람에도 쉽게 날아갈 듯, 발걸음 하나 헛디디면 추락할 것 같은 불안감. 그 불안감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것이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듯 시간과 노력을 통해 점점 무언가를 이루고, 아무것도 모르던 핏덩이 시절 머물던 지상과는 간격이 조금씩 벌어지게 된다. (대단한 차이는 아니고, 계단 두세 칸 정도이다. 하지만 계단 한 두 칸 높이에서도 떨어져 보면 그 차이도 꽤나 고통스럽지 않나.) 그런데 그 높이에서도 나는 현기증을 느끼곤 한다. 다시 저 아래로 내려가야만 할 것 같다. 본디 지상에서 태어났고 내 발바닥은 흙을 밟고 태어났는데 어찌 구조물 위 이 차가운 시멘트 바닥이 편할 수 있겠어요. 그런 현기증을 느낄 때 다시 바닥으로 추락하고 싶었고, 그저 매트리스 위에 영영 파묻히고 싶었다.
그 노력이라는 게 말이야. 높이 올라갈 수 있는, 또 그곳에서 버틸 수 있는 그런 원동력인데. 그게 난 왜 싫었을까. 그렇게 내려오려면 그래도 안전하게 한 두 칸 정도 높이가 적당하지 않은가? 하고 미련하게 점프. 혹은 추락하고 싶은 충동이 마구마구 생겨난다. 그래도 꾸역꾸역 버텨오고 한 칸, 두 칸 올랐는데. 그럼에도 참을 수 없는 현기증, 추락 욕구는 나아지질 않는다. 게으르고 싶은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계획 없는 퇴사는 그런 의미에서 추락 욕구를 반영한 것이다. 휙. 하고 떨어져 버린 것이다. 내 두 다리로 착지한 것이다. 그래서 안정감을 느꼈는가? 안정감을 느끼고 있는가? 스스로 질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