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돌아가기 한 달 전쯤 문득 나는 그곳에 가고 싶어졌다. 까맣게 잊고 있던 내 꿈, 꼬마 시절 브라운관 화면을 통해 보이던 높고도 아득한 구름 속에 가려져 신비로움이 가득했던 미지의 세계 죽기 전엔 꼭 한번은 가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 산속 오래된 도시 마추픽추
태양의 문 절벽 난간에 걸터앉아서 멀리 고대도시를 바라본다. 적당히 시원 바람이 불어오는 이곳에서 나는 어린 시절의 그토록 원하던 꿈을 이뤘다. 수많은 꿈들 중 살면서 가볼 수 있을까 했었던... 초등학생 시절 아득하고도 깊게 묻어 두었던 바람을 20년 뒤 이뤄냈다. 그냥 멀리서 바라만 봐도 좋았다. 그렇게 나는 한참이나 앉아서 오래전 사람들이 살았던 도시를 감상하고 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혼자만의 생각을 한다. 살살 내 얼굴을 스치듯 지나치는 바람의 숨결을 느끼며 서른의 내가 열 살의 꼬마인 나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시대를 관통하고 하나의 공간으로 묶인다. 나는 왜 이토록 이곳에 오고 싶었을까? 그 시절 나에게 다시 한번 듣고 싶었다.
어린 시절 나는 텔레비전과 함께 살았었다. 우리 부모님은 시골 조그만 동네에서 유선방송을 하셨기 때문에 자연스레 텔레비전을 보는 횟수가 많았다. 그러면서 많은 프로그램을 다수 섭렵했던 시기였다. 부모님이 일하시는 사무실에 가면 여러 대의 텔레비전에서 다양한 종류의 방송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유선방송은 일반 드라마나 쇼프로그램 등을 녹화했다가 낮에 정규방송이 끝나면 전날 녹화했던 방송을 다시 틀어 주는 일을 했었다. 그렇게 나는 자연스레 텔레비전과 친했으며 시청 시간도 많았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었던 어느 날 만화를 다 보고 할 일이 없어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구름에 가려진 고대도시가 방송에 나왔다. 그 장면은 나를 잉카문명으로 빨려들게 만들었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방송이었는데 마치 나에겐 생생히 살아 있는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조그만 시골 동네밖에 모르던 꼬마의 머릿속에서 처음으로 이 동네를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가고 싶다는 꿈을 꾸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아마 잉카의 문명보다는 산꼭대기에 있던 그 도시가 마냥 신기 했었던 거 같았다. 세상에 저런 곳에 도시가 있고 또 그 안에서 사람들이 문명을 이뤘었다니 만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들을 눈으로 확인하니 그 충격이 더 컸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가슴 한구석에 작은 꿈을 품고 성장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린 소년은 어느 순간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고 군대도 다녀와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의 톱니바퀴가 되어 의지와 생각을 뒤로한 채 살고 있었다가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떠났었던 워킹홀리데이에서 잊고 있었던 오래된 꿈 하나를 건져 올렸다. 내가 처음 동네 밖을 탐험하고 경험하고 싶다고 느끼게 해주었던 꿈이자 희망을 말이다.
눈을 뜨고 다시 도시를 바라보니 느낌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마치 열 살의 꼬마였던 나와 함께 나란히 앉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다시 한번 삶의 방향을 재정리 하였다. 하고 싶은 여행은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 하기로, 나이가 들어서 하는 여행이 나쁘진 않지만, 지금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이러한 경험과 감정들은 누가 대신해주는 것도 돈으로 사주는 것도 그렇다고 20년 뒤에 내가 겪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기에 나는 현재의 내 삶에 충실하기로 했다. 비록 경제적 압박에서는 벗어나기 힘들겠지만, 어차피 내가 감당할 몫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감을 느끼며 힘들어지자 그래서 다시 한번 꿈을 꿀 수 있도록 새로운 활력과 방향을 찾아 떠나는 힘이 되어 주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