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마추픽추에 와 있다. 몸을 돌려 도시를 한 바퀴 둘러본다. 실감이 안 날 정도로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이곳에 왔다니 누군가에겐 단순한 여행지일 수도 있겠으나 나에게는 그 의미가 남달랐기에 더욱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원래는 와이나픽추(잉카말로 젊은 봉우리라는 뜻)를 가고 싶었지만 이미 티켓이 매진되고 없었다. 하루에 단 2,000명만 올라갈 수 있도록 인원 제한을 걸어놨는데 나는 선택받지 못했다. 가기 한 달 전부터 홈페이지를 내 집마냥 들락날락했는데 나는 그 시기를 놓치고야 말았다. 묻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다. 다른 여행자들이 나보다 더 노력했고 그 대가를 치렀기 때문이다. 원하는 마음이 들 때는 좀처럼 쉽게 다가갈 수 없다는 생각을 가끔 하는데 이번에도 같았다. 그래서 차 선택을 한 것이 태양의 문이었다. 나는 아쉬움을 달래기라도 하듯 마추픽추에 오르자마자 그곳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때뿐 쉬지 않고 목적지를 향할 걸었다. 마치 그곳을 정복이라도 하려는 장수의 마음으로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오기가 생겨서 그랬던 거 같다. 정말 어린 아이가 된 것처럼 말이다. 그러던 중 거의 목적지에 다 달랐을 때 한숨 돌리기로 하고 멈춰서서 풍경을 한번 훑어보다 저 멀리 마추픽추와 와이나픽추가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내 분신인 카메라를 손에 들고 생각할 겨를 없이 셔터를 눌렀다. 아마 이 순간의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랬는지 연신 셔터를 누르며 욕구를 해소하고 있었다. 한창 정신 놓고 촬영 중 웬 아시아계 남자가 내 앞에 서서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닌가? 순간 머릿속에 뭐지? 라는 생각이 들던 찰라. 그 여행자의 가방에 붙어 있던 태극기 패치를 보게 되었다. 나는 순간 너무 반가운 나머지 안녕하세요? 라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근데 내 인사를 받은 여행자가 화들짝 놀라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내가 실수 했나 싶어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이내 나에게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라고 놀란 표정과 함께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일본사람인 줄 알았는데 한국말로 인사해서 놀랐다고 한다. 나는 캐나다에서 일하며 살이 많이 빠져 있었고 또한 머리카락도 자르기 귀찮아 길게 길러 꽁지머리로 묶고 있었기에 그 모습이 일본사람처럼 보였나 보다.
그렇게 만난 인연 덕에 우리는 몇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친구로 지내고 있다. 내가 마추픽추에 갔을 때만 해도 한국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던 시기다. 이듬해 꽃보다 청춘에 나오기 전까지는 남미는 아직 한국 여행자에게 익숙하지도 편하게 갈 여행지는 아니었기 때문에 타지에서 만난 이 친구가 더욱 반가웠던 것 같다. 우린 이 끈을 놓치지 않고 각자 여행 후 밑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시간이 가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푹 빠져서 걸어 다녔다. 아마 다시 못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정말 내가 갈 수 있는 곳을 꼼꼼히 다녔고 기록했다.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간직하고 싶어 고집부리듯 돌아다녔다. 그렇게 구경을 마치고 돌아갈 때쯤 문득 밑에서 만나자고 했던 약속이 떠올라 부리나케 입구로 향했다. 허겁지겁 내려와서 보니 버스정류장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버스를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사람들 사이로 일단 친구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어디에도 친구가 보이지 않아 기다리다 내려간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상심하고 있었는데 뒤에서 누가 한국말로 부르는 것이 들려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 친구가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내 뛰듯 걸어가 사과를 먼저 건넸다. 너무 혼자 심취해 구경하다 늦었다는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친구는 웃으면서 괜찮다고 했다. 본인도 내가 먼저 내려와서 기다릴까 봐 부리나케 내려왔는데, 없어서 내가 먼저 내려간 줄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약속 시각이 남아 아직 위에 있을 것 같아 다시 마추픽추 마을 입구까지 다시 다녀왔다며... 그 얘기를 듣는 나는 어디 쥐구멍으로 숨어 들어가고 싶었지만 별것 아니라는 그의 말에 조금씩 마음이 풀렸다. 약속은 신뢰이자 믿음인 것인데 너무 개인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안일하게 생각한 나 자신이 너무나 바보 같고 부족하게 느껴졌다.
우린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구아스깔리엔테스 마을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그러면서 아까 못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한국의 기본 인사인 나이 이름 등의 세속적인 내용을 주고받았고 이름이 최문석이라는 것도 이십 대 중반을 이제 막 넘어 김광석의 서른쯤이 가까워지고 있는 청춘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이곳에서 하루를 더 머물렀다 처음 도착했던 쿠스코로 돌아가는 일정이었고 문석이는 오늘 밤 기차로 넘어가는 일정이었다. 해서 쿠스코 숙소 예약도 안 했겠다. 문석이가 머무는 게스트하우스로 가기로 했다. 그곳은 한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였는데 쿠스코에서는 2곳의 한인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거로 알고 있었다. 아무튼 아침밥도 이모님들이 손수 한식으로 차려주신다니 오랜 타지생활로 한국의 집밥이 그리웠던 나는 고민할 필요 없이 결정했다. 그렇게 문석이랑은 저녁 식사 후 헤어졌고 다음 날이 되어 나도 쿠스코로 향했다. 문석이가 알려준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지만 숙소 안은 사람 없이 휑하니 허전했다. 일단 씻고 보자는 생각으로 씻으니 사람들 소리가 들렸다. 다씻고 방안에 들어서니 문석이 있었는데 이때 인연은 여행 후에도 나의 삶의 일부이자 중요한 사람들로 자리매김했다. 방에서 만난 친구는 진호 형, 성윤이, 호진이, 승재, 문석이와 옆 여자방에서 장기 투숙하던 혜진이 누나 그리고 나와 함께 캐나다에서부터 인연이 되어 미국부터 처절하게 같이 여행하고 있던 다영이까지 해서 총 8명이 마치 오랜 친구처럼 여행 내내 함께 다니면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여행했다. 그리고 이 인연은 끈은 여행이 끝난 후 한국에 와서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진호 형과 문석이 다영이는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했으며, 나와 성윤이 호진이는 아직 미혼이다. 그리고 승재는 한국 와서 연락이 뜸하게 되어 결국 연락이 끊겼지만, 만약 기회가 되면 다시 보고 싶다.
한국에 와서 문석이에게 어떻게 하다가 내 앞에서 사진을 찍게 됐냐고 질문했었다. 그때 문석이의 대답은 아버지가 어디를 가서 사진 찍을 때 주변에 큰 카메라나 잘 찍게 보이는 사람 옆에서 똑같이 찍기만 해도 절반에게 성공한다는 말을 해주었는데 딱 눈앞에 그런 사람이 있어 따라 찍었다고, 진짜 속으로 일본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국말로 인사하길래 적지 않게 놀랬다며 나에게 후일담을 전해 주었다. 어쩌면 이런 문석이의 선택 때문에 우리는 이어질 수 있었고 그 끈은 인연이 되어 우리의 관계를 지속하게 해주게 되었다. 지금은 각자의 영역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친구들을 보면 그때 자유로운 영혼의 갖고 있던 여행자들이 생각난다. 어쩌면 나나 친구들이나 한 쪽에 늘 갖고 있던 모습이었는지도... 나는 아직 그때와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나도 언제까지나 이런 모습은 아닐 터 그때 그 시절로는 돌아갈 수 없겠지만 다행히 추억할 수 있는 사진들이 있고 또한 그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이 옆에 있으니 어쩌면 제일 완벽에 가까웠던 여행이다. 여행하면서 꾸준히 인연을 이어온다는 것이 쉽지는 않고 예전만큼 자주 연락은 못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서로 끈으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인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