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눈이 떠졌다. 오늘은 기차를 타고 다시 쿠스코로 향한다. 짧았던 2박 3일간의 일정이었다. 제대로 마을을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에 돌아가기 전 잠깐 나가 산책하기로 했다. 이른 새벽이었는지 사람들이 많이 보이진 않았다. 마을을 둘러싼 산등성이에는 짙게 안개가 내려앉아 있었다. 새벽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맑았다. 그래서 그런지 떠나야 한다는 것이 더욱더 아쉽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사진을 더 못 찍은 것에 대한 서운함이 그 안에 묻어 있었던 거 같다. 나는 오전 기차를 예매했기에 짧은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와 짐을 챙겨 플랫폼으로 향했다. 어제 문석이 다영이와 함께 플랫폼 근처에 있는 기념품 시장을 잠깐 다녀왔는데 딱히 사고 싶은 건 없었지만 가기 전에 뭐라도 하나 사갈까? 했었다. 하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었는지 아직 상점들이 문을 열지 않았다. 역시 생각날 때 사야 하는 건 어딜 가서도 똑같나보다 그래도 쿠스코에서도 살 수 있으니 아쉬움은 크게 남지 않았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먼저 기차를 타고 오얀타이탐보역으로 간다. 그리고 다시 콜렉티보를 타고 쿠스코로 향하는 일정이었다. 기차는 클래식했다. 증기기관차 같은 느낌이었는데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그래서 주변 풍경을 천천히 보면서 가는 재미가 있다. 천천히 흘러가는 창밖을 보고 있노라면 옛 생활 풍습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전통복장을 하고 라마 혹은 알파카를 데리고 다니며 농사를 짓는 모습 등이다. 나는 신기해서 연신 창밖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속으로는 남을 일정을 더 늘려 며칠간 더 머물고 싶단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아쉬움은 기차와 함께 흘려보냈다.
플랫폼에서는 많은 사람이 함께 우수수 나왔다. 그리고 사람들은 각자의 여행길을 위해 흩어진다. 나도 쿠스코로 향하는 콜렉티보를 기다렸다. 콜렉티보는 작은 버스인데 쿠스코까지 가는 사람들을 나르고 있었다. 가격은 저렴한 편으로 버스에 인원이 다 차면 출발하는 형식이다.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가는 재미가 있다. 나와 다영이도 콜렉티보에 짐을 싣고 쿠스코로 출발하였다. 가는 중간 사람들은 내렸다 타기를 반복했다. 짧은 거리가 아니었기에 마음 편히 가기로 했다. 가는 내내 밖을 볼 수 있었는데 넓게 펼쳐진 평야가 인상적이었다. 마치 우리가 탄 버스는 대 자연 안에 작은 점 같이 느껴질 정도로 시야가 탁 트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는 길은 멀었지만 심심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어느덧 쿠스코에 도착했다. 고개를 넘어 시내가 있는 쪽으로 구불구불 길을 따라 버스가 움직인다. 그러다가 갑자기 중간에 살짝 멈췄다. 왜 그런가 봤는데 아이들이 길 위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속으로 나는 영화에서만 보던 장면을 상상했다. 나는 멈춰서 있던 버스에서 내려 가방을 들쳐 메고 아이들 있는 곳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같이 축구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진도 찍으며 많은 얘기를 나누는 그런 상상.... 그렇다 그냥 상상만 한 것이다. 버스는 곧바로 출발했고, 나는 상상 속에 그 멋진 장면을 벗어나고 있었다. 인생에 있어 몇 번 되지 않은 좋은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굳이 축구를 하지 않더라도 그냥 내려 사진만 찍었어도 그 감동은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으리라 생각된다. 아이들의 얼굴은 열정적이었고 착해 보였다. 지나가는 동안 밖을 보면 손을 흔들던 나를 바라보면서도 낯선 이방인에게 경계보다는 웃음으로 화답했으니 말이다.
쿠스코 시가지 안에 도착했다. 첫날 도착했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인데 몸을 한 바퀴 훅 돌려보며 도시를 다시 눈에 담아 본다. 건축물에서 과거가 보 있다. 그리고 역사가 느껴진다. 변화하는 현대 속에서 옛 문명의 자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 참으로 흥미로웠다. 우리나라는 근대에 들어와서 많은 발전을 이뤘다. 아마 전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을 정도로 이른 시일 내에 말이다. 다만 그러면서 우리 머릿속에는 어느 순간 옛것보다는 새것이 더 좋고 편하다는 인식이 들어차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멀쩡하고 아직 쓸만하여도 부수고 새로 짓는 일이 다반사다. 몇 해가 지나고 같은 동네를 가면, 새삼 낯설게 느껴지는 점도 거기에서 온다. 분명 내가 기억하고 있던 모습과는 많이 변화된 모습... 바뀐다는 게 나쁘다고만 말할 수 없지만 낯설게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는 지도를 보며 문석이가 알려준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기로 했다. 배낭을 메고 여행용 가방을 끌기 시작했다. 바닥은 돌바닥으로 여행용 가방을 끌고 다니기 힘들 정도였다. 마치 유럽의 거리를 걷고 있는 듯하다. 그러다가 여행용 가방 손잡이에서 툭 하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 부러졌다. 워낙 약했던 손잡이긴 했지만 길이 워낙 울퉁불퉁 하다 보니 충격이 고스란히 손잡이에 전해졌으리라... 속으로 욕하신 욕을 혼자 하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내 짐인걸.. 감내하며 들고 가기로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는 사실이었다. 다영이가 오빠 여기겠다고 알려주었다. 초인종을 누르니 현지 사람이 나왔다. 순간 나와 다영이는 당황했지만 짧은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주어 한시름 놓았다. 분명 한인 게스트하우스라고 들었는데 현지인이 나와 적잖이 당황했다. 다행히 한국인 직원분을 불러 주신다기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한국인 직원분이 안내를 위해 나왔다. 밝은 웃음으로 인사를 건네고 우리가 머물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나는 그 직원에게 마추픽추에서 만난 친구 때문에 알게 되었다고 그 친구가 머무는 방으로 가고 싶다고 말해주었다. 직원분은 다행히 침대가 남아있다며 그쪽으로 안내해 주었고, 다영이도 맞은편 여자 게스트룸에서 짐을 풀 게 되었다.
내 예상으로는 문석이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도 없어서 약간 아쉬움은 있었지만 잠깐 뭐 사러 나갔다는 얘기에 일단 짐을 풀고 씻기로 했다. 한창 씻고 있는데 밖에서 말소리가 들려온다. 아마 문석이가 돌아온 듯 했다. 나는 씻는 걸 마무리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문석 이외에 몇 명의 친구들이 같이 있었다. 우리는 짤막하게 통성명을 하면서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우리는 남은 여행에서 더할 나위 없는 서로의 친구가 되었다. 방안에는 문석이, 호진이, 승재가 있었고, 셋은 남미 여행 중에 만나 같이 여행한다고 했었다. 그리고 저녁쯤 우리 모임의 큰 형인 진호 형과 성윤이도 만날 수 있었다. 우린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처럼 빠르게 친해졌다. 그리고 저녁을 함께 먹기로 했다. 그 와중에 다영가 있는 방으로 잠깐 갔는데 거기서 혜진 누나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여행 메이트가 되었었다. 진호 형, 혜진 누나, 성윤이, 호진이, 승재, 문석이, 다영이까지 매일 밤 우리는 술을 마시고 각자의 여행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헤쳤다. 그곳에 한식을 해주시던 이모님이 계셨는데 여기 있는 동안 이렇게 게스트들끼리 잘 맞아서 노는 건 처음 봤다면서 보기 좋다며 칭찬 아닌 칭찬을 해주셨다.
다 같이 저녁을 먹기 위해 쿠스코 광장으로 나왔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누군가 꾸이를 먹어보자는 제안을 했다. 꾸이는 페루의 대표적 관광 음식이었다. 하지만 나와 다영이는 순간 표정이 굳어졌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살아 있는 꾸이를 본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날 아구아스깔리엔테스에 도착했을때 일이다. 저녁을 무엇을 먹을까 하며 돌아다니다가 꾸이라는 음식에 도통 궁금해 하던 차에 식당 문밖에 있던 청년에게 이게 무슨 음식이냐고 물어봤다. 청년은 잠시만 기다리라고 알려준 뒤 식당 안으로 들어가 품 안에 무언가를 넣어서 다시 우리에게 걸어왔다. 그리고 품 안에 있던 꾸이가 되는 식자재를 보여주었는데 우린 둘 다 깜짝 놀랐다. 그 이유는 품속에서는 귀엽고 아담한 기니피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꾸이는 바로 이 기니피그를 갖고 요리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 청년에게서 멀어졌다. 사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지만, 적지 않게 당황했던 나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아무튼 그것을 알았던 우리는 약간 망설였지만 그래도 이왕 온 거 다 같이 가서 먹기로 했다. 그리고 꾸이의 가격은 비싼 편에 속했기에 혼자나 둘이서 가서 먹기에는 부담스러웠다. 우린 적당한 식당을 찾아 들어가기로 했다. 우리 중에 그나마 혜진 누나가 스페인어를 하기에 누나를 앞세워 식당에 들어갔다.
식탁을 삥 둘러앉아 우리는 요리를 기다렸다. 주문했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요리가 나왔다. 첫인상은 그냥 통구이 느낌이었다. 청년의 품속에서 있던 기니피그는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금액과 비교해 양이 너무나 적었다. 그래도 이왕 시킨 거 한점씩 먹어보기로 하고, 각자 품평회를 하기 시작했다. 몇 명은 괜찮다고 했고 몇 명은 그저 그렇다는 입장이었는데... 그냥 쫄깃한 고기 먹는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로 고기를 좋아해서 그런지 크게 거부감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면 늦은 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때 누군가의 입에서 클럽 이야기가 나왔다. 여기도 클럽이 있고 사람도 많다고 했다. 다들 호기심 반 의심 반으로 간다고 했지만, 나는 그냥 숙소로 돌아가서 쉬기로 했다. 왠지 모르게 피곤이 가시질 않았기에 쉬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고산지대이다 보니 산소가 부족해 피곤이 일찍 밀려오는 것 같다. 혼자 돌아와 침대에 덩그러니 누워 있다. 조용히 혼자 방 안에 있는 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꿈속을 유영하듯 쿠스코에서 첫날 밤, 오늘 하루를 정리했다. 머릿속에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난 여행의 추억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간다. 27시간의 비행기를 타고 힘들어했던 일, 꿈에 그리던 곳에 도착했을 때의 설렘과 그 안에서 느꼈던 마음들 하나하나가 모여 나만의 이야기로 쓰이고 있었다.
처음으로 떠나던 날의 내 모습과 생각의 방향 그리고 마음가짐 또한 현재를 대하는 자세 등을 비교해 봤을 때 8개월이 흐른 지금 너무나 많이 변해 있었다.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나를 변화시켜주었던 것은 분명했기에 이 여행이 나에게 주는 영향이 적지 않았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간혹 사람들을 만나면 목적 없이 결론 없이 무작정 떠나는 여행은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곤 했는데 그게 왜 안 좋은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냥 여행은 여행이다. 무엇을 얻으려고 가는 것도 무엇을 이루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기 위해 떠나는 것이었다. 그 안에서 고난과 역경을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스스로 이겨내며 나 자신의 자존감을 높여 나를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나를 치유하는 행위이다. 나에게 있어 여행은 그런 존재였다. 나를 속박하던 모든 것들에게 해방하고 자유를 주는 그런 약 같은 존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