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가르침

by 혜윰

이른 아침 침대에 누워 졸린 눈을 껌벅껌벅하며 멍하니 있었다. 아침 일찍 마추픽추를 보러 떠난 친구들도 있고 나와 같이 침대에서 아직 잠을 청하고 있는 친구도 있다. 밥 먹으라는 소리에 대충 얼굴만 씻고 1층 식사하는 곳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친구들과 오늘 어떻게 할 건지 이야기를 두런두런하던 중 그냥 같이 쿠스코 시내를 다니자고 했다. 나는 마추픽추만 생각하고 왔기에 나머지 일정은 따로 정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남은 3일 동안 쿠스코를 둘러보고 달동네도 같이 갈 생각이었다. 나와 다영이 혜진 누나 성윤이 그리고 문석이까지 우리는 같이 쿠스코를 둘러보기로 했다. 시내를 처음 구경하는 나는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엇인가 현대문명과 과거의 유적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시는 분지 안에 형성되어있어 중앙 광장을 기점으로 해서 넓게 도시가 퍼져 있었다. 점점 산 쪽으로 가면 현지인이 사는 동네가 많고 광장으로 올수록 관광지와 관광객들이 주를 이뤘다.


오랜만에 먹은 한식이었는지 배가 빵빵하도록 먹은 것 같다. 이모님들의 음식을 먹으니, 마치 한국에서 먹는 푸근함이 느껴져 더욱더 든든한 느낌이었다. 하늘이 파랗게 빛이 난다 햇살은 따사로웠으며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들떠 있었다. 나름대로 공기가 좋을 것 같아 힘껏 들이마셨는데 뭔가 코끝이 찡하게 아려왔다. 그저 고산지대여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나중에 직원분께서 알려주시길 매연 때문이라고 했다. 속으로 웬 매연? 이라고 생각했지만 관광지다 보니 사람도 많고 그걸 운송하려는 차들이 대부분 노후한 차들이란다. 그래서 저녁쯤 되면 목이 칼칼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고... 전혀 생각 못 한 부분이었는데 조금만 깊게 들어가도 현지의 실상을 알 수 있다는 것에 나름 큰 교훈을 얻었다.


나는 카메라를 들쳐 매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오래 못 가 금방 서서 셔터를 눌렀다. 모든 게 새로운 모습이었고 신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나치면 다시 얻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롯이 뷰파인더 안에 보이는 세상이 나의 세상처럼 느껴지는 이 순간이 너무나도 좋았다. 아마 그 점 때문인지 사진을 놓지 못하고 있다. 우리 다섯은 광장을 거점으로 유명관광지를 하나씩 클리어해 나갔다. 그중 쿠스코에서 가장 유명한 12각 돌벽 앞에서 사진찍기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 이 좁은 골목에서 많은 사람이 잉카문명의 정교함을 나타내는 12각 돌을 보며 신기한 마음으로 사진 찍는다. 우리도 이렇게 놓칠 수 없어 차례대로 줄을 서서 사진을 찍기로 했다. 첨단 장비도 없었을 시기에 이렇게나 정교하게 돌을 12각이 나오도록 또한 물 샐 틈 없이 딱 들어맞게 제작했다는 점에서 얼마나 많은 석공의 노력이 필요했는지 또한 이러한 경지에까지 올 수 있었던 그들의 장인정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고대의 문명, 아직도 풀지 못하는 많은 유적지들을 보면서 어쩌면 과거 인류보다 현대의 우리가 되레 퇴화하지 않을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도 들었다.


친구들의 웃는 모습이 좋아 몰래몰래 친구들도 함께 담았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친구들을 닮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걸어오라고 하기도 하고, 각자 포즈도 취해보라고 했다. 모델이 되는 게 어색했던 친구들이었지만, 이내 익숙해져서 재미있게 촬영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친구들을 찍는 이유 중에 하나는 내 주변엔 예체능 계열 밖에 없어서 공대 계열은 쉽게 접할 수 없었는데 여기서 만난 친구들은 죄다 공대 출신 이었다. 마냥 딱딱할 것 같고, 감정이 없을 줄 알았던 나의 개인적 견해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다들 감성 충만하고 창의적이고 나보다 더욱더 의욕적이었기 때문이다. 내 카메라에 찍힌 친구들의 모습은 나보다 더 여행자 같은 모습이었다.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둘러보며 걸었고, 중간중간 내기도 하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즐겁게 지냈다. 그러다가 우린 배가 고프다는 걸 인지하고 근처에 식당에 가기로 했다. 딱히 아는 곳이 없었기에 대충 찍어서 괜찮을 것 같은 곳에 들어가기로 했다. 메뉴판을 보고 있는 나는 약간 패닉에 빠졌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다른 친구들도 쳐다봤는데 다들 표정이 비슷비슷했다. 나는 제일 먼저 결심해 얘기했다. 세계 어디를 가나 닭고기는 맛있을 테니깐 나는 치킨 들어간 요리를 시키겠다고, 그러자 다른 친구들도 그래도 나도 그거 시킨다며 아마 절반 이상이 같은 음식을 시켰던 거 같다. 닭은 삶고, 튀기고, 구워도 맛있기에 반은 가겠지라는 생각은 음식이 나오고 비주얼에 한 번 깨지고 맛을 보려 입안에 넣고 씹는 순간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그렇다. 닭고기도 맛이 없을 수가 있구나!! 라는 큰 깨달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대충 씹어 넘겼다. 역시 매 순간이 배움이고 교훈이다. 나의 섣부른 판단은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겠다는 커다란 가르침을 안겨주었다. 입가심을 위해 우린 가장 가까운 카페로 들어갔다. 다들 주문한 음료가 나오고 한 모금씩 하면서 안도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나는 속으로 이제 여행 가면 닭 요리도 신중하게 골라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아무튼 하나하나가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된다 했나 우리는 또 금방 음식에 대해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나는 조금씩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내 생각보다 더 많이 편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마 한국에 있을 때는 돈이 아깝거나 그 음식에 대해 아마 신랄하게 비판적 어조로 대화를 이어 갔을 텐데 마음의 여유가 있으니 소소하거나 별것 아닌 것은 그저 웃어넘길 수도 있고 여유를 부릴 줄 알게 되었다는 사실 말이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나는 그걸 못하고 있었다. 왜일까? 아마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자신을 묶어 두고 있었는지 모른다. 어떠한 상황이 생기면 그 모든 것에 이유를 붙여, 명분을 만들었었다. 그 명분은 내가 비겁하지 않고,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 되어 나를 변호 하는 장치로써 항상 앞세웠다. 결국, 나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고, 다른이를 탓하기만 했던 상황에서 늘 알 수 없는 불만들만 있었다.


여행하면서 나도 모르게 스스로 묶어놨던 족쇄를 조금씩 풀고 있었나 보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매일 같은 모습의 형태들을 보면서 그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가두었던 내 마음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과 자연을 보며 천천히 열린 듯했다. 마치 아침과 밤의 시간이 바뀌고 추웠던 날들이 지나고 봄이 다가와 촉촉하게 내리는 이슬이 내 심장 속을 적시고 따뜻한 햇볕처럼 감싸 안아 주듯 그렇게 평온하게 인도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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