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볕이 따뜻하게 비추고 있다. 일요일인 오늘은 이모님들이 쉬는 날이라 조식이 없었다. 다만 근처 슈퍼에서 한국 라면을 판다고 해서 우리는 다 같이 라면을 먹기로 했다. 쿠스코까지 와서 라면을 먹는다는 상상을 못 했는데 생각보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는지? 아니면 한국 라면이 인기가 있었는지? 마트에서 판매하는 것에 조금은 신기하기도 하면서 감사했다. 라면을 먹기 전 우리는 오전에 각자 일정을 보기로 했다. 내일이면 각자의 길로 흩어지기에 여행이 계속되는 친구들은 필요한 물품이나 서류를 떼러 가기로 했다. 나야 이제 돌아갈 일만 남았기에 따로 구비하거나 필요한 물품이 없어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중 성당을 가기로 했는데 마침 혜진 누나도 시간이 괜찮아 함께 이동하기로 했다.
오전부터 현지 사람들로 거리가 북적인다. 중앙광장으로 나오니 쿠스코의 상징과도 같은 대성당이 보이고 앞으로 많은 사람이 성당을 들락날락하고 있다. 그중에는 관광객들이 섞여 있었는데 웬일인지 다들 밖에서만 보고 있었다. 이유는 가까이 가서야 알게 되었는데 일요일 미사 시간에는 현지인 말고 외부인이나 관광객은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다. 기껏 왔는데 안으로 들어가 보지도 못한다는 사실에 실망감이 있었지만, 규칙은 지키라고 있는 거니 그냥 밖에서 짧게 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사람들이 성당에서 우수수 나오고 있었다. 미사가 끝남과 동시에 외부인 출입금지가 풀려 운 좋게 누나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첫인상으로 성당 내부는 정말 웅장했다. 고풍스럽고 오래된 역사의 냄새가 곳곳에 묻어 있었다.
남미의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페루도 스페인에 오랜 시간 점령을 당했기에 그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일례로 지금 성당이 있던 위치는 원래 잉카문명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스페인침략 당시 유적지를 부수고 그 위에 성당을 세웠다고 한다. 그래서 쿠스코 사람들에게 있어 성당은 아픈 역사를 간직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둘이서 둘러보던 중 누나는 나에게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알려주었다. 성당 가운데를 기준으로 벽 쪽을 빙 둘러서 보면 여러 가지의 동상이 있다고, 그 이유는 각자 믿는 신이 다르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이 각각의 동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정성스럽게 기도하고 있었다. 나는 비록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그들이 신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니 신성하다는 느낌이 저절로 와닿았다. 성당 내부는 촬영 불가여서 나도 카메라는 잠시 내려두고 눈으로 하나하나 감상하고 있었다. 직업이니 만큼 습관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기록하는 게 익숙해져 있지만, 이렇게 온전히 두 눈으로 보면서 내 머릿속에 기억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신중하게 좋은 구도와 앵글을 찾지 않고 그저 눈에 비치는 대로 온전하게 받아드릴 수 있었다. 예전 인터넷에서 사진 한 장을 본적이 있었다. 한 행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유명인사를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지만 유일하게 한 할머니만 카메라 대신 온전히 두 눈으로 미소와 함께 감상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찍은 사람도 놀라웠지만, 그 안에 비치던 할머니의 표정이 더욱더 인상적이었다.
천천히 구경하는 도중 누나가 인상적인 게 있다면서 내 팔을 잡아끌었다. 맨 안쪽 벽에 가장 크게 있던 그림이었는데 바로 최후의 만찬이었다. 이미 너무나도 유명한 명화였기에 그냥 흥미롭게만 보고 있었는데 누나가 그림에서 뭐 특이한 점이 없냐고 나에게 물어왔다. 대충 훑어만 보고 있었기에 글쎄? 라는 물을 표를 던졌는데 나에게 다시 한번 자세히 보라고 전해 주었다. 이내 나는 시선을 다시 그림으로 향했고 이번에는 세세하기 보기로 했다. 그러던 중 가운데 특이한 음식이 하나 있었다. 얼핏 보면 통돼지 구이같이 보이던 그 그림은 바로 첫날 쿠스코에 와서 친구들이 먹었던 꾸이였던 것이다. 참으로 특이했다. 왜 저기에 꾸이를 그려 넣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나라는 뺏겼지만, 정신은 빼앗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 모습에서 우리나라가 자연스럽게 떠올라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각자 믿는 신들의 동상이 조금씩 변형되어 있었다. 이는 잉카의 후예들이 지키고 싶었던 나라, 그 나라를 상징하던 유물과 건축물들은 온전히 남아 있지 않았지만, 침략자들이 남긴 종교와 건축물 안에서나마 그들 자신의 역사를 간직하고 싶었던 마음이 아니였을까?? 성당 안은 단순히 미사를 보는 공간이 아니었던 것 같다.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고 그 안을 둘러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마치 예술작품 감상과 역사 수업을 동시에 한 느낌이었다.
어두운 성당 밖을 나오니 눈이 부셨다. 얼마의 시간 동안 그 안에 있었는지 가늠이 안 되었다. 그런데 대성당 앞 광장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몰라 나도 기웃기웃 거렸는데 누나가 다영이 만나러 간다며 같이 갈 거냐고 물어봤다. 나는 여기 금방이라도 무슨 행사할 거 같은데 그냥 구경할게라며 누나와 헤어졌다. 많은 인파 사이를 뚫고 지나가니 기념일 행사를 하는 것 같았다. 마치 독립기념일처럼 쿠스코지역 내에 주둔해 있는 군인과 공무원 그리고 아이들과 학생들 그리고 시민들까지 함께 참여하는 행사였다. 속으로 이게 무슨 횡재이냐는 생각에 카메라를 들었다. 곧바로 군인들의 열병식을 시작으로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식전행사가 한창일 때 한쪽에서 많은 수의 사람들이 움직임을 느껴 나도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유치원쯤 돼 보이는 꼬마들부터 대학생까지 보여 있었다. 아마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면 그룹별로 나뉘어 행진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무엇에 이끌린 것처럼 그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사랑스러운 천사와 마주쳤다.
개구쟁이 아이들은 오늘만큼은 천사가 되고 곤충이 되었으며 꽃으로 태어났다. 아이들의 눈은 호수처럼 깊고 맑았으며 미소는 사랑스러웠다. 누구라도 보면 마음이 이내 차분해지면서 미소가 절로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나도 모르게 홀려 셔터를 눌렀다. 내가 카메라를 들자 아이들은 쑥스럽지만 그래도 즐거운지 연신 미소와 자세를 취해주었다. 아무래도 이방이 신기했던지 아이들은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안에 외국인이라곤 카메라를 든 백인 할아버지와 몇몇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외국 기자쯤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사진 찍히는 것에 호의적이었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한 것이 나중에 다시 올 때에는 조그마한 폴라로이드 카메라나 휴대용프린터를 갖고 와서 바로바로 사진 프린트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담고 있을 때 보라색 원피스에 왕관을 쓴 미모의 여성분이 앞으로 지나갔다. 아마 우리나라 미스코리아쯤 돼 보인다.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주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촬영하다 보니 한참이나 쭈그려 앉아 있었나보다 무릎과 어깨가 결려오는 것이 느껴진다. 역시 좋은 이미지가 보일 때에는 그거에 집중하느라 제 몸 하나 돌보기가 쉽지 않다. 잠시 숨을 돌릴 겸 스트레칭을 하려 일어났다. 잠깐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이 보였다. 아마 현지인 말고 관광객들도 이 광경을 보러 온 것 같다. 나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는데 좋은 구경을 할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오전이었다. 누가 뒤에서 툭툭 건드렸다. 뒤를 돌아보니 혜진 누나가 나를 부르고 있던 것이다. 주변에 사람이 많아 부르는 소리를 못 듣고 계속 촬영하고 있으니 직접 데리러 온 것이다. 시계를 보니 친구들과 약속 했던 시간은 이미 수분을 지났다. 약속장소에 내가 없자 아마 이곳에 있을 것 같아서 찾아왔다고 한다. 기다리는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나는 카메라를 챙기고 친구 뒤를 따랐다. 인파 속을 헤치고 지날 때 눈앞에 붉은 장미 화관을 쓴 어여쁜 여자아이와 뽀글뽀글한 머리에 빗자루를 들고 있는 귀여운 남자아이가 눈에 띄었다. 아마 예수님과 관련된 복장 같았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에 누나한테 양해를 구한다. 아이들에게로 다가갔다. 말은 안 통하지만 사진 찍는 제스처를 보여주니 이내 수줍은 미소와 함께 어여쁜 모습으로 화답해 주었다.
친구들과 라면을 먹으러 숙소로 가는 길 내내 혼자 생각에 잠겼다. 잠시였지만 성당에서 느꼈던 감정들이나 천사 같은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던 기회들 이 모든 게 마치 우연처럼 다가왔지만 자연스럽게 나에게 녹아들었다는 것, 계속해서 좋은 기억과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나날들 모든 게 완벽한 날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내가 기대하고 있는 달동네의 여행이 더욱 기대되었다.
여행하면서 한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은 개인마다 다르다. 나는 좋았지만 다른 이에겐 최악의 여행지로 남기도 하니까 말이다. 내가 눈으로 보는 모습은 뇌를 통해 새롭게 재 정립되며 저장된다. 좋았던 기억은 훨씬 더 과장되게 기억되며 그렇지 못한 기억은 그 여행지를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어둡게 바꾼다. 그래서 여행 책자를 보고 가다 보면 책을 쓴 사람과는 정반대로 느껴지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문석이와는 쿠스코 여행 내내 같이 다녔었는데 내가 길을 걷다 좋은 장면이 보여 반대편으로 건너자마자 형! 하고 나를 불러세웠다. 왜 그러냐고 다가가니 형 없어진 거 없냐고 자기 지금 소매치기당했는데 형은 괜찮냐며 물어왔다. 다행히 나는 털리기 직전 길을 건너서 무사할 수 있었는데 문석이는 뒷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도난당했다. 그 휴대폰 안에는 그간 여행했던 사진과 여행 시 필요한 지도를 다운받아놓았었기에 큰 낭패를 본 것이다. 경찰서 가서 도난신고를 하긴 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경찰서에서도 그냥 서류하나 써주면서 아마 못 찾을 거라는 말 한 마가 다였다니, 문석이의 얼굴이 아주 실망스러워 보였다.
여행을 되돌아볼 때 나의 기억은 추상적 감상이 더 많다. 아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그려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여행했던 지난날의 추억들은 다소 과장되거나 축소될 순 있어도 그 안에서 느꼈던 감정만큼은 솔직담백 할 정도로 직선적이다. 여행자의 기억이 왜곡되어 달라질 순 있어도 손으로 느꼈던 촉감과 피부에 와닿던 질감 그리고 호흡하며 알 수 있었던 마음만큼은 변함 없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