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정신없이 해치운 것 같다. 이 얼마 만에 먹어보는 MSG인지 모르겠지만 역시 입에 쫙쫙 감기는 게 최고이다. 다른 보약 필요 없이 외국에 나왔을 때는 라면만 한 게 없는 듯하다. 더 늦기 전 달동네로 향하기로 했다. 나와 함께 가기로 한 친구는 혜진 누나, 승재, 문석이다. 이들도 관광지 말고 현지인들이 사는 곳이 궁금하다고 해서 같이 가기로 했다. 일단 4명이 같이 다니니 마음이 훨씬 편해진 것 같다. 도시가 분지여서 어디 꼭대기 마을로 갈까? 하다가 멀리 산꼭대기에 대형안테나들이 모여있는 곳이 보여 그곳으로 향하기로 했다. 일단 길을 모르니 무조건 안테나가 보이는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관광객은 보이지 않고 현지인들만이 눈에 띈다. 친구들과 설렘을 앉고 걸어가던 중에 멀리 오래된 폭스바겐 비틀이 길옆에 주차되어있었다. 골목도 오래돼 보여 잘 어울렸다. 한두 장의 사진을 찍고 이동한 데 한 10m 앞에 어느 할머니가 단정하게 앉아 우리를 보고 있었다. 무심한 듯 바라보던 눈빛이 잊히지 않았다. 그래서 꼭 담아야겠다는 생각에 할머니가 바로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몇 장의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다. 할머니는 지긋이 그냥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말이 필요 없을 만큼의 시간이었다. 공간 안에 할머니와 나 둘만 있는 느낌이었다. 분명히 친구들도 함께였었는데 그들의 목소리를 들리지 않았고 그저 나를 바라보던 할머니와 대화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얼굴에서 그간의 세월의 흔적과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 때문에 친구들의 시간이 소비되기에 더는 지체 할 수 없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초반부터 지체하다 보면 원래 보려던 목적지를 못 갈 수가 있어, 순간순간 좋은 장면들은 후다닥 찍고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 중반부쯤 왔을 때였다. 여긴 제법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있어 삼거리 기준으로 조그만 슈퍼와 길거리 노점상들이 몇몇 눈에 띈다. 아마 여기서부터가 제대로 현지인들만 거주하는 느낌이다. 올라오다 보면서 알게 된 하나는 건물들이 점점 낙후된다는 점 형태만 갖춰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이들에겐 이게 최선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쿠스코는 자원이 있지만, 개발능력이 없어 다른 나라에 개발권을 넘겨주었다고 한다. 다만 그로 인해 혜택보다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더 커졌단다 그래서 현지인의 생활이 어려워졌으며 삶의 질은 점점 떨어지게 되는 실정이라고 어디서 들었다. 만약 자본개발 능력이 있었으면 이들의 삶은 좀 더 나아졌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지나갔다. 눈에 익숙한 표지판이 보인다. 바로 PC방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익숙한 시설이 눈앞에 있으니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현지인들의 주 생활 지역이라고 이해하니까 금방 수긍이 되었다. 우리나라에 있다 외국 나와서 인터넷을 쓰면 그 속도에 놀라 우리나라의 기술력에 감사함을 느끼곤 하는데 이곳 인터넷 속도는 얼마가 될지 자못 궁금했지만 들어가진 않기로 했다.
신나는 음악 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나는 쪽이 마침 우리가 가던 길이서 발걸음을 재촉했는데 조그마한 행사를 하는 것 같았다. 간이 무대가 세워져 있었고 그 무대 앞에는 관중들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한쪽 부스에는 아이들이 체험활동을 하고 있고 다른 쪽에는 무대를 올라가려는지 멋들어진 무대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대기해 있었다. 대학 복학과 함께 나는 문화예술단체에서 인턴 일을 하면서 생활비와 학비를 같이 모았었다. 이때 단체에서 많이 했던 문화사업중 하나가 찾아가는 문화 활동으로 이 모습은 마치 그때 내가 했었던 활동처럼 보였다. 문화예술을 쉽사리 접하기 힘든 곳에 찾아가 체험과 공연을 함께 진행하는 우리나라의 예술지원프로그램이었다. 이 모습을 보니 그때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전국을 방방곡곡 누비면서 우리의 문화프로그램을 같이하며 행복해하는 이들이 얼굴이 같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무대에서 열심히 공연을 펼치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연신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오래 되어 보이는 놀이터에서 행사는 치러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조그만 언덕마을에 작은 음악회가 열린 느낌이었다. 성대하진 않아도 각자 열심히 준비한 공연은 그 가치가 충분히 빛나고도 남았다. 아이들의 밝은 표정에서 나오는 웃음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얼굴에도 함께 행복이 전해지고 있다. 행복이란 늘 가까이 존재한다. 매일매일 어렵지만 그 안에서도 행복한 일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삶의 짓눌려 그 행복을 헤아릴 틈도 없는 우리는 지금 어떤 세상을 살고 있을까? 나 역시도 비행기에 첫발을 내 디뎠을 때의 감정을 아직 간직하며 지난날 도망치듯 떠나왔던 곳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일이 없었는가에 대해 잠시나마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우연히 발견한 언덕 위 작은 마을에서 열린 음악회를 보며 행복의 조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 할 수 있었다. 전혀 다른 세상에 와서 제3의 눈으로 다르다고만 생각하고 신비롭다는 생각을 하고 많은 사람을 바라보았지만, 결국엔 나를 다른 시각으로 보는 거와 같았다. 사람들 속에서 내 모습이 함께 투영되었으며, 그 느낌이 낯설다기보다 익숙함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