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마실

by 혜윰

햇살을 피할 겸 놀랬을 위를 진정시킬 겸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자연스레 내일 일정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 있었는데 나는 내일 달동네에 갈 것이라고 말했고, 시간이 괜찮은 사람 중에 같이 갈 생각 있음 가자고 했다. 남미에서 그것도 외부인은 잘 안 가는 현지인들만 사는 동네에 간다는 건 생각보다 큰 결심을 해야 한다. 어떠한 상황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도 아무렇지 않게 말은 꺼냈지만 혼자보다는 내심 친구 중 한명이라도 같이 가주었으면 바랬다. 두근두근 할 때 문석이와 혜진 누나가 같이 가자고 한다. 어차피 형 있을 때까지 있다가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이니 같이 다니고 싶다고 옆에서 사진 찍는 거 보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혜진도 누나는 어차피 나는 다른 일정도 없고 딱히 할 것도 없으니 같이 가자며... 속으로 얼마나 든든하고 안심이 되었는지 모른다. 생각 이상으로 나는 쫄보였던 것인지 말을 듣자마자 안심을 했으니 말이다.


한낮의 태양이 저물어 하늘이 붉게 물들 때쯤 우리는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갔다. 그리고 먼저 와있던 친구들과 다시 조우를 할 수 있었다. 다 함께 저녁을 먹고 무엇을 할지 궁리했는데 누군가가 분지위에 있는 예수상에 가자고 한다. 다들 바로 오케이라는 말을 끝내자마자 일단 택시를 부르기로 했다. 날씨가 추우니 따뜻하게 걸쳐 입고 문밖을 나섰다. 하늘은 어둠으로 짙게 깔려 있었으나 광장 쪽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낮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붉은 조명은 건축물에 더욱 질감을 주어 신비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가 도착했는데 우리는 나 포함 6명이었다. 오래 걸릴 것 같지 않아 일단 꾸겨 타기로 했다. 꼬불꼬불 길을 따라 차가 움직이니 우리도 이리저리 흔들리며 작은 곡소리를 내고 있었다. 조금만 있으면 도착인데 그 길이 이렇게 멀게 느껴질 줄이야...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리고 보니 어찌나 살 것 같은지 추웠지만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택시는 우리를 내리자마자 다시 시가지로 향했다. 우리는 갈 때는 어떻게 가지? 라는 생각을 잠깐 아주 잠깐하고 그건 돌아갈 때 생각하자는 말을 뒤로하고 예수상 근처로 향했다. 가까이서 보니 그 크기가 더욱 거대해 보였다. 카메라가 한 번에 담기 힘들 정도였으니, 그냥 눈으로 감상하기로 했다. 그보다 더욱 장관이었던 건 야경이었다. 반짝반짝 도시가 빛나고 있었다. 마치 호숫가에 달빛이 비쳐 수면위로 달빛이 반짝이는 것 같은...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언덕에 부는 바람 사이로 찬 공기가 스며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저 친구들과 이렇게 좋은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 너무나 좋았기에 그저 이 상황에 감사할 뿐이었다. 우리 말고도 몇 명의 여행자들도 멀리 보이는 도시를 보는 눈빛에서 어떤 감정이었는지 가늠할 정도였다.


더 늦기 전에 내려가기로 했다. 택시를 부르는 것도 어려울 것 같고 고민 끝에 우리는 걸어서 가기로 했다. 그렇게 출발하려 마음먹는 순간 눈앞에 콜렉티보(미니버스)가 보였다. 우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버스에 올라탔다. 막상 내려갈려고 하니 바람이 너무 추웠고 일단 거리가 너무 멀어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때마침 나타난 버스가 마치 은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 말고도 같이 야경을 보던 여행자들도 함께 버스에 올랐다. 그들도 역시 우리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었나 보다. 버스 안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서로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지만 무엇인가 즐거웠다. 그러던 중 한 여행자가 소리 내 웃었는지? 얘기했는지 모르겠지만 무엇에 홀린 것 마냥 우리도 같이 왁자지껄 웃어댔다. 낯선 마음과 어색한 경계가 한순간에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처럼 목적지 도착할 때까지 함께 재미나게 놀았다.


짧은 찰나의 시간에도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언어의 차이는 있었지만, 마음의 차이는 없었던 것 같다. 서로 온전히 여행자로서 말보다는 눈빛과 마음으로 웃으면서 대화했던 시간이다.

우린 이렇게 그냥 들어가기 아쉬운 마음에 도시의 야경을 좀 더 즐기기로 했다. 늦은 시간이다 보니 낮보다는 사람이 많지 않아 천천히 걷고 둘러보기엔 더없이 좋은 시간대였다. 한창 떠들고 얘기하는 중간에 어디서 닭꼬치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자연스레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섰다. 각자 무엇을 먹을 것인가 고민하다가 내기를 하기로 한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두 사람이 쏘기로... 나의 머릿속은 불타올랐다. 우리는 그렇게 닭꼬치를 앞에 두고 열정적으로 가위바위보를 했다. 현지인들은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우리 쪽을 보면 한참이고 웃어 보였다. 결국, 나는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머쥐었고 달콤한 닭꼬치를 입에 넣을 수 있었다. 이렇게 소소한 행복을 느껴본 지가 언제였을까? 어느덧 성인이 되고 경제적 활동을 주도적으로 하기 시작할 때부터 감정이 메말라 가는 느낌이 들었다. 학창 시절 그냥 친구랑만 있어도 시간이 언제 가는 줄 모르던 그때 나는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거 같아 너무나 행복했다.


시간은 지나면 과거가 되고, 기억은 어느새 좋은 추억이 된다. 그렇기에 과거의 좋은 추억을 남기기 위해 나는 친구들과 일을 사진으로 남겨둔다. 여행 사진을 보면 내 사진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직 내가 나를 기록한다는 것이 어색한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건 내가 담았던 풍경과 인물들 그리고 함께했었던 친구들의 눈빛에 비친 내 모습이 대부분이다. 그걸로 나는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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