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의 부름이다. 해가 저물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한다. 눈앞에 계단이 보인다. 무릎이 아작날 거 같은 느낌이다. 이렇게 올라왔는데도 또 저만치 올라가야 한다니...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여기까지 온 이상 끝을 봐야 하기 때문에 나는 열심히 올라간다. 내 무릎은 언제부턴가 조금만 무리를 하면 아파져 오기 시작했다. 연골이 달았는지 아니면 물이 찼는지 모르지만, 관리를 열심히 해줘야 한다. 그래도 이렇게 좋은 순간이 오면 또다시 무리하게 되니 악순환이 반복된다. 하늘은 점점 붉게 물들고 있다. 사진 촬영할 때 가장 좋은 시간은 해가 뜨기 시작하는 새벽과 해가 지는 노을의 빛 내림 순간이다. 그리고 나는 쿠스코에서 제일 높은 동네에서 그 노을의 순간을 맞이하려 한다. 마음이 조급해 지는 게 더 빨리 계단을 올라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자 정상이 보였다. 그리고 노을이 제일 잘 보일 것 같은 곳으로 걸어갔다.
우리 넷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저 멀리 넘어가는 노을 바라고 보고 있다. 하긴 말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말을 하지 못했다가 맞는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는 같은 생각을 했다. 여기 오길 정말 잘했다는... 이 장면을 못 보고 그냥 지나쳤으면 모를까. 이미 봐버린 이 풍경을 그냥 지나친다는 건 인생에 있어 가장 멋있는 해 질 녘 순간을 놓친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이다. 세계 3대 선셋도 있는데 노을 지는 모습이 너무나 황홀하기에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하지만 여긴 바다도 아니며, 그렇다고 휴양지도 아닌 제일 높은 동네이자 현지인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매일 보는 이들에게는 똑같은 노을처럼 보였겠지만 나와 친구들에게는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쿠스코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도 모자라 도시를 둘러싼 능선까지도 한눈에 들어왔다. 옛날 잉카인들이 왜 이곳에서 터전을 잡고 살아갔는지 한눈에 이해 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품과 같은 분지 안은 아마 찾기로 마음먹지 않았으면 외부에서 찾기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저 멀리 노을 지면서 붉은 태양 빛이 도시 전체를 비춰 황금색으로 빛났는데 혹 영화에서나 볼 법한 황금으로 둘러싼 도시의 모습이었다. 나는 감격에 찬 눈으로 노을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선물이 맞을 것 같다. 오늘하루 말이다. 마냥 큰 기대보다는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정이었는데, 매순간 매순간이 감동처럼 밀려왔다. 게스트하우스 직원분의 말대로 무섭기보다는 되려 시가지 사람들보다 더욱 순수하고 맑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고 따뜻한 손길로 우리를 대해주었다. 아마 남미에서 이렇게 다니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안전상의 문제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다행인지 몰라도 이곳 쿠스코에서 아니 내가 오늘 걸었던 이 길위에서는 위협이란 단어도 무서움이란 단어도 존재 하지 않았다. 이럴 수 있었던건 나와 함께 걸어준 친구들의 몫도 빼놓을 수가 없다. 제일 처음 감사한건 이곳에 올 수 있었으매, 두번째로는 너무나 좋은 친구들을 만난것에 마지막으로는 안전하게 이 모든순간을 함께 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해는 완전히 산 뒤로 넘어 새벽의 하늘처럼 검 푸르스름하게 내려앉았다.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흘렀기에 우리는 서둘러 내려가려 했다. 제대로 된 가로등이 없어 원래 왔던 길 말고 듬성듬성 가로등이 켜져 있는 길을 이용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올라왔을 때보단 캄캄한 밤 내려갈 때 더욱 안전에 유의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여기 오면서 생각한 것 중 첫 번째도 안전이고 두 번째도 안전이기에 아무런 사고 없이 잘 돌아가야 했다. 발길을 재촉하던 때에 한 무리의 젊은 청년들이 지나가다 우리를 불러세웠다. 우리 넷은 순간 뭐 때문에 우리를 불러세웠는지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큰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그 짧은 순간 생각하고 있었다. 무리 중 한 청년이 말을 건네왔는데 다행히 영어로 물어봤다. 우리 중 문석이가 대화했는데 짧게 이야기 후 인사를 건넸다. 문석이에게 다가가 무슨 얘기를 했냐고 물어봤는데 별거 없었단다. 그냥 영어 공부를 하는지 외국인한테 말 걸어 보고 싶었던 거 같다고 한다. 그러면서 어디서 왔는지 여행 어떤지에 대해서 짤막하게 건네주고 받았다는 것이다. 그제야 나는 안도를 했다. 혹시나 생길 수 있는 불상사가 없었기에 다시 한번 다행이라는 마음이었다.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능선을 따라 약간 돌아가는 길이 나왔을 때였다. 저 멀리 능선 위에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실루엣 두 개가 보인다. 제법 거리가 있어 보였지만 사람이라는 건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자가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것도 가늠할 수 있었다. 이 늦은 시간, 이 둘은 저기 능선 위에서 무엇을 할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었다. 보통은 집에서 저녁을 먹거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아니면 친구들을 만나고 있을 것 같은데 점점 어둠이 내려앉는 이 시간에 나란히 서 있던 모습이 인상적이다. 좀 더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고 아들의 얼굴은 하늘을 향해 있었다. 나도 그 시선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았는데 작은 새처럼 보이는 것이 날고 있었다. 나는 곧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은 새가 아니고 연이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열심히 풀칠하며 만들어 교실 밖 운동장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날리고 놀았던 그 연 말이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의 연 날리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늦은 시간 혼자 연을 날리고 있을 자식을 위해 친구가 되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멀리서 실루엣처럼 희미하게 그들의 모습이 보였지만 알 수 있었다. 어머니의 사랑이….
매 순간 여행하며 많은 걸 얻고 있는 것 같다. 같은 시간이지만 일분일초가 허투루 쓰이는 게 없다. 힘들었던 순간도 좋았던 순간에도 매 순간 나는 조금씩 알아가고 배운다. 지나치는 풀잎에서 시간을 흐름을 오랜 건물에서 문명의 역사를 그리고 사람과 동물들에서는 잊고 살던 감정의 기억들 말이다. 이 모든 순간이 하나로 묶여 앞으로의 나에게 있어 밑거름이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한참 뒤에는 잊지 못할 앨범 속 작은 이야기들로 추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