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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Mar 22. 2020

남아프리카공화국, 여행시작

남아프리카공화국 여행기


"아니! 경찰서 앞에 차를 세워놨는데!? 다음날 보니깐 감쪽같이 증발했다니까요? 이거 진짜 실제로 있었던 일이에요!" 제 친구가 겪었던, 그리고 또 어두운 밤에 혼자 걷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쫓아 오는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돌려 뒤를 봤는데 웬 남자가 손에 쇠 막대기를 들고 제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는 거예요! 그 캄캄한 밤에 가뜩이나 흑인 애가 그러고 있으니, 완전 쫄아서 오줌 지릴 뻔했다니까요? 그때 진짜 귀신이라도 본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친 듯이 뛰었던 거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하고 있지만, 정말 사파리 같은 도시에요..."


형 그리고 입국할 때 조심하세요. 얘네들 한국 사람, 그 아시아 애들한테 시비 엄청나게 걸어요. 별것도 아닌데 괜히 짐 검사하면서 계속 트집 잡고 입국 심사 늦게 하고, 그게 뭣 때문에 그러냐면 돈 달라는 거에요. 몇 명 안 되는 한국 유학생 중에 안 당한 사람이 없어요. 또 어떤 날은 아무 일 없이 입국심사 끝나고 짐을 찾고 나가려는데 갑자기 뒤에 공항 직원이 불러세우더니 다시 짐 검사하고, 또 트집 잡길래 아.. 어쩐지 순수하게 보내주더라니.... 순간 방심했더니 한 방 먹죠 뭐! 아니 더 웃긴 건 우리야 여기 유학생이라서 그렇다고 쳐도, 여기에 사는 한인들한테까지도 그러니 공항 도착할 때마다 신경 쓰일 수밖에 없어요. 아마 우리 이번에 들어갈 때도 그럴 수 있는 가능성 배제할 수 없으니 그 점 숙지해 두고 있으세요! 


비행기 안에서


몇 시간을 날았던 것일까? 캄캄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재호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에서 겪었던 일화들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미지의 세계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고 그저 구전으로만 들었던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들, 어두운 밤하늘 서로가 하나씩 연결되어 빛이 나는 별자리만큼이나 수많은 잡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드디어 내가 남아공을 가다니!! 한국에서 홍콩을 경유해 재호가 머무는 도시 요하네스버그로 향하는 이 여정은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2016년 12월 초의 추운 겨울이 막 시작되던 날 갑자기 여자친구가 친구 따라 남아공으로 여행을 간다고 했다. 아니 친구 따라 강남 갔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남아공? 아니 무슨 옆집 가듯이 얘기하네! 속으로 얘 뜬금없이 무슨 말 하는 거야? 라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여자친구 입에서 나온 말은

"재호, 이번에 마지막 학기 마치고, 한국 오기 전 약 한 달가량 여행한다고 해서 나도 이번이 기회다 싶어서 같이 간다고 했어!"

"재호?!, 내가 알고 있는 그 재호?"

맞다 여자친구의 중학교 때부터 절친이었던 재호! 어느 날 갑자기 자기 남아프리카로 학교 간다며 고등학교 졸업 후 일 년의 재수 후 한국 대학도 붙었는데 무슨 마음에서 인지 남아공으로 떠났던 그 친구, 보통 다른 남자친구였다면, 미쳤어?! 어떻게 둘이 여행을? 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좀 다른 말을 처음 내뱉었다! "어어!! 나도 갈래! 나도 따라갈래!?" 둘이 간다는 불안감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너무나 가고 싶었다. 진짜 너무 너무나 아프리카가 가보고 싶었던 나였다. 사진 찍는 사람들에게 로망과도 같은 사파리에서의 야생동물들, 그 흡사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디스커버리 같은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그 장면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점이 더욱 나를 끌어당겼다.


그 왜 있지 않은가? 어린 시절 동물의 왕국에 나왔던 익숙한 내레이션을 통해 "이 장면은 수사자 두 마리가 서로의 영역을 두고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진 사자들은 무리에서 떨어질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위험하죠!" 이 간결하면서 귀에 콕콕 박히는 해설 속 성우의 목소리가 교차하면서 나의 심장은 더욱 쿵쾅거렸다. 사파리만큼 시골에서 자란 나이 서른이 훌쩍 넘은 수컷 냄새 풀풀 나는 나에게 설렘으로 가득 차 있던 스무 살 그때 대학생이 되어, 서울 태생 서울말 쓰는 이성을 처음 본 시골 촌놈의 상기된 얼굴과 고장 난 펌프처럼 미친 듯 날뛰던 심장은 깊은 곳에서부터 쉴 새 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한편으로 이번이 진짜 기회였다고 생각한 것이  살면서 내가 남아공? 아니 아프리카 땅을 밟을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함만이 있었던, 하지만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대륙 중 최우선이었기에... 프리랜서로 일하던 나에게 그나마 제일 일이 없던 2월이었기에 이때 같이 안 가면 기회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먼저 들어 무작정 따라나선다고 했다. 그리고 돈은 일단 갔다 온 다음에 생각하기로 했다. 좋건 안 좋건 모든 것은 내가 감당할 몫이었기에, 그리고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기에 다녀와서 생각하자는 마음을 먹었다. 고작 한 달인데 설마 다녀와서 죽기야 하겠냐? 라는 마음이었는데, 여행 이후 한동안 일이 없어... 진짜 한동안 내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천당과 지옥을 롤러코스터 타듯이 인내해야 했다.


떠나기 전 재호한테 모험담 같이 들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가히 상상을 뛰어넘는 흡사 무법지대 같은 느낌이 더 강해서 약간 조심스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사파리도 간다고 했기에 주저 없이 따라나선다고 했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남아공에서 4년 동안 대학을 다닌 재호가 함께하는 여행이라는 안도감과 든든함이 내 뒤를 버티고 있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 안심할 수 있었다.




두근두근 


어둠이 걷히고 해가 밝았다. 비행기는 수평을 유지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사선으로 내려가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하늘 위에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던 별들을 어느새 사라지고 뜨거운 햇살이 조그마한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비행기는 빠른 속도로 대지로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눈앞에 길게 경계를 이루던 구름 속으로 비행기가 다른 차원의 문을 통과하듯이 작은 요동과 희뿌연 공간을 지나쳐 다시 햇살 가득 머금은 파란 하늘의 또 다른 세계에 다다랐다. 처음 내 눈앞에 보인 것은 붉게 물든 것 같은 넓은 대지였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각형의 건물들도 눈에 들어오고 나서야 내가 도착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창밖으로 보이던 비행기 날개 끝에 그려진 남아공의 국기와 도시가 사뭇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타이어의 찢어질 듯한 굉음과 요동치는 비행기의 짧았던 퍼포먼스를 끝으로 비행기에서 내릴 수 있었다. 나는 한두 번 여행을 다녀본 것이 아니었지만 재호의 경험에서 나왔던 그 후덜덜한 공항 체크인의 바이브를 나도 당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다른 때보다 유독 상기될 수밖에 없었다.


여자친구와 나는 입국심사를 코앞에 두고, 서로 떨리는 목소리로 아.. 어떤 걸 물어볼까? 나 영어도 잘 못 하는데 괜히 붙잡히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라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어느새 앞에 아무도 없고 우리 차례가 되어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여권을 내밀었었는데, 입국 심사관은 내 여권을 한번 훑고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알 수 없는 미소를 띠고, 바로 도장을 쾅! 하고 찍어주었다. 그리고 별말 없이 내 여권을 도로 돌려주며, NEXT! 라고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너무 허무하게 끝나버린 입국심사?! 속으로 잉? 엥? 오잉? 을 몇 번이고 되뇌고 있었는데 옆 칸에서 심사를 받던 여친은 내가 통과되고서도 오분이 지나도록 오지 않기에 속으로 아..! 뭔가 일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저기 구석에서 실실 웃으면서 걸어오는 게 아닌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왜 이렇게 늦었냐고 물어보니, 심사하시는 분이 어떻게 왔냐? 여행하러 왔냐? 오! 재미있는 시간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대화를 했다는 것이 아닌가? 자기도 처음에 걱정되었는데 친절하게 이것저것 사소한 거 물어봐서 대화하느라 좀 늦었다며, 자기도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별거 아녀서 다행이라고, 이제 짐 찾으러 가자며 내 팔을 잡아끌었다.


이제 진짜 실전이다. 보통 짐을 찾을 때 직원들이 시비를 걸고 다시 짐 검사 명목으로 사람을 붙잡아 진을 뺀다고 했는데, 이젠 돌아갈 방법도 내뺄 수단도 없고 무조건 부딪혀야 한다. 나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아무 일 없는 듯이 우리의 짐이 있는 컨베이어벨트로 향했다. 벨트가 움직이면서 내는 소리에 맞춰 줄지어 가방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개미가 이동하는 것처럼 줄지어 나오는 가방들 사이 이번 여행을 위해 큰마음 먹고 산 나의 70L 대형 배낭이 눈에 들어왔다. 이 어여쁜 놈과 함께 여행한다는 사실에 나는 나도 모르게 프로여행가로 빙의 되어 있었다. 고작 한 달 남짓한 여행인데 마치 상상 속의 내 모습은 끝없는 일정으로 발길 닿는 곳곳 누비며 사진을 찍는 프로 여행사진가였다. 이 소소한 행복은 여행을 끝나는 내내 나와 함께 했다.


혼자 상상하는 사이 옆에서 정신 차리고 짐 단디 챙겨! 이제 나가야 하니까! 라며 내 단꿈을 깨웠다. 아차! 맞다! 여길 나가야 진정한 천국의 문을 통과하는 것이었지? 라며 나는 이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는 최대한 사람들과의 눈을 피하며 걸어 나왔는데 그러다 순간 고개를 돌려 옆을 보는데 공항 직원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한줄기 식은땀이 순식간에 포동포동하게 살찐 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짧은 순간 나는 백만 가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긴장감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직원은 그저 별말 없이 나를 보며 따뜻한 미소를 건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차차! 내가 너무 경직되어 있었구나! 너무 조심한 나머지 친절함조차 경계하고 있었던, 나를 보며 약간의 실망감도 함께 찾아왔다. 그날 근무했던 공항 직원들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내가 운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이제 점차 그런 게 사라지고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의 두려움과 경직된 몸을 봄날의 따뜻한 햇볕처럼 데워서 풀어주던 그 직원의 환한 미소에서부터 남아공 여행이 시작되었음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공항 밖의 첫 모습은 참!! 삼성!! 우리나라 기업 대단하다!! 라는 국뽕이었다. 한국에 있는 나는 삼성보다는 LG 제품을 더 선호하고 이용하지만, 이렇게 이역만리 외국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제품이 공항 출구 바로 나와 엄청난 크기로 광고를 하고 있으니 심히 기분이 묘한 건 사실이었다.

우리보다 먼저 남아공에 와있던 재호가 마중을 나오기로 했는데, 아직 안 오고 같아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어렸던 그 시절 처음으로 놀러 간 놀이동산을 보는 듯 신기한 마음에 이리저리 고개를 바삐 움직여 공항 이곳저곳을 보고 있었을 무렵 멀리서 하얀 피부에 노란색 머리를 한 재호가 환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와~! 진짜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와락 끌어 앉을 뻔했지만, 간신히 이성의 끈을 놓치지 않고 어정쩡한 표정으로 인사하고 말았다. 우리는 재호의 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카트를 움직였다. 우리의 비행 여정을 익히 경험한 재호는 짐이 잔뜩 실려 있는 카트를 먼저 낚아채어 앞장서서 갔다. 그리고 나는 재호의 행동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대로 공항 카트를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로 그대로 밀고 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놀람 반 어색한 마음 반으로 재호에게 "이거 끌고 에스컬레이터 타도되냐고 질문을 했는데, 나보고 형! 옆에 봐봐요. 여긴 다 이렇게 한다며 나에게 옆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를 가리켰는데, 아니나 다를까? 모든 사람이 심지어 짐을 끌어주는 직원들조차 다들 같은 방식으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게 아닌가? 새로운 문화 충격이었다. 이게 문화인지 아니면 위험을 몰라서 그런지 알 수 없었는데, 여기선 당연하다는 듯이 모든 사람이 공항 카트를 이동할 때에도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고 있었다. 되려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약간의 생소함을 뒤로 한 채 재호의 차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무거웠던 짐보따리를 차에 싣고, 드디어 공항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가장 추웠을 1월 말이었지만, 여긴 그와는 정반대인 뜨거운 여름, 다만 습하지 않아서 그런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공기는 장시간 굳어있던 몸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풍경들이 내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왔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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