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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Jul 27. 2019

아테네에서의 하루 중
밤 풍경

산토리니 : 포토에세이


밤 풍경


  새벽 1시 인천 공항에서 최종목적지인 산토리니로의 긴 여정을 시작할 비행기에 탑승한다. 밖은 어두컴컴하고 날씨는 쌀쌀한 3월의 중순쯤이었다. 다행인 건지 비행기에는 사람이 많이 없어 창가 자리에 앉은 나는 옆좌석이 모두 공석이라 마음 편히 시작할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는 굉음이 요란하게 울린다. 곧 하늘을 향해 힘차게 도약할 것 같다. 그리고 내 마음도 어느새 두근두근했다. 몇 번을 타더라도 이륙할 때의 느낌은 항상 나를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설레게 해주었다. 하늘을 향해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도시는 점점 멀어져 어느덧 하늘이 아닌 땅에도 별빛처럼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3개월은 점점 멀어지는 한국의 풍경처럼 멀고 아득해 보이기만 했다. 그리고 어느샌가 나는 밤의 하늘 속에서 고요함과 함께 선잠에 들었다.


사람들의 작은 소리에 나는 눈이 떠졌다. 대충 몸을 추스르고 앉아서 조식을 받을 준비를 했다. 이제 중간 환승지인 도하에 도착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대충 식사를 마무리하고 기지개를 켜고 나는 기내방송으로 도착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안내가 나온다. 환승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 두어 시간이면 그리스 아테네로 향하는 비행기에 다시 오를 예정, 잠깐의 대기시간엔 스트레칭해야겠다.


비행기 번호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바로 안내판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출발 예정 시간표에 내가 타고 갈 번호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처음부터 다시 끝까지 확인하던 찰나 비행일정표 맨 끝에서 연착이라는 안내 메시지가 보이고 내가 타고 갈 비행기 편이 그 옆에 자리하고 있다. 무려 6시간. 이렇게 되면 아테네에서 당일날 바로 산토리니로 들어가는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 같아. 바로 업무 관련 담당자와 연락 후 새로운 일정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아테네에서 하루 동안의 시간을 여행할 수 있었다.


기나긴 시간이었다. 6시간 연착이었던 비행기는 결국 1시간 추가 연착해 총 7시간을 채웠다. 여행하다 보면 종종 생긴다고 하지만 피곤한 걸 어쩔 수 없나 보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아테네 공항에 도착했다. 답답한 마음에 공항 밖으로 나가서 크게 숨을 들이마셨는데 순간 목이 턱턱 막혔다. 담배 냄새였다. 공항 밖 호텔로 향하는 버스를 타려 정류장에 왔는데 많은 사람이 버스를 기다리며 흡연을 하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맡은 많은 양의 담배 냄새였다. 개인적으로 담배를 피우지 않아 더 자극적으로 다가왔던 거 같다.



 아테네의 첫 하늘은 파랗게 맑았는데 첫 공기는 매우 답답함을 안겨 주었다. 대충 냄새 안 나는 곳으로 몸을 옮긴 뒤 버스를 기다렸다. 목적지가 신타그마 광장이었는데 다행히 종점이어서 내릴 때 걱정거리 하나를 덜었다. 덜컹거리면서 버스는 움직였다. 중간중간 사람들이 타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나는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는데 생각보다 이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스산한 느낌이랄까? 아직 초겨울 느낌이 강했던 건지 아니면 도시로 향하는 풍경이 원래 그랬던 건지 또 아니면 내 마음이 그렇게 보이게 했는지 아직도 나는 잘 알지 못하겠다. 40여 분을 달려 나는 종점에 도착했고, 3개월간 함께할 짐들을 힘겹게 옮기며 호텔로 향했다. 역시 중심 시가지여서 그런지 사람들로 광장은 북적였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긴 비행 여정에 몸과 마음이 흘러내릴 듯이 피곤함으로 절어 있었다. 짐은 대충 구석에 밀어 넣고 욕조에 물을 받아 반신욕을 하며 피로를 덜었다.


잠깐 나도 모르게 잠들었나 보다. 꿀 같은 잠에서 깨고 보니 하늘에는 다시 어둠이 내려앉았다. 순간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다. 내일 오후 비행기로 바로 산토리니에 가야 하기에 오늘은 아테네에서의 첫날 밤이자 동시에 마지막 밤이었다. 이대로 그냥 쉴 것인가? 아니면 잠깐이라도 밤거리를 산책할 것인가? 짧은 시간 동안 내면에서는 나와의 사투가 벌어졌다. 결국 내 발걸음이 이긴 것 같다. 머릿속은 고민 중이었지만 내 발은 이미 문밖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기에 이미 결론 나온 시시한 고민을 순간 진지하게 했던 거다.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인 아테네 밤거리를 걷게 되었다.





  낮보단 관광객이 많이 줄어든 시간이지만 그래도 밤의 여운을 느끼기 위해 도시에 남은 사람들은 골목을 걷고 얘기를 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나도 처음 왔을 때보다는 훨씬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면서 주변을 볼 여유가 생겼고 사람들 속에서 자연스레 걷고 있었다. 도시는 어두운 밤이지만 그 안을 비추는 가로등 불빛은 도시를 따뜻하게 비추었다. 이제부터 3개월간 산토리니라는 섬에서만 있어야 하기에 어쩜 나에게 미리 해주는 선물 같은 여유였는지도 모른다.



1시간 30분간의 시간 동안 사진도 찍고 이런저런 생각의 정리도 함께했던 시간이었다. 내일 아침 일찍 아크로폴리스를 보기 위해 더 늦기 전 나는 호텔로 돌아왔고, 푹신한 침대에 다시 몸을 맡겼다. 낮잠을 잔 후였지만 이내 나는 기절하며 깊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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