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애플을 닮은 기생식물, 틸란드시아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쯤 이상한 식물을 접한 적이 있었다. 이름도, 생긴 것도 영 생소한데다 예쁘다는 생각은 단 1%도 들지 않던 기억 속 그 식물. 그런데 이 식물이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먼지 먹는 식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그것은 바로 미세먼지 가득한 공기를 맑게 정화시키러 온 우리의 구원자, 틸란드시아다.
다육이에 수많은 종류가 있듯이 틸란드시아에도 약 500여 종이 존재하며, 국내에서도 수십여 종이 유통되고 있다. 다육식물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형태의 식물을 경험하는 건 역시나 떨리는 일인 것이다. 여름에는 새 식물 식구를 들이지 않겠다는 신념과 사계절 새 식구를 들이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던 중, 틸란드시아는 '굉장히 키우기 쉽다'는 이야기를 듣고 생김새도 키우기도 가격도 가장 무난한 이오난사라는 이름의 틸란드시아를 첫 번째 식구로 맞이해 보았다.
파인애플목 파인애플과의 기생식물로, 나무 같은 곳에 붙어 공중에 매달려 생존한다. 뿌리는 매달리기 위한 용도로만 사용된다. 다육식물을 다육이, 다육 등으로 부르는 것처럼 틸란드시아도 틸란시아, 틸란 등의 별칭으로 불리며 이름이 길어 외우기 어렵다면 검색창에 '먼지 먹는 식물'로 검색하면 바로 찾아낼 수 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첫인상은 그저 파뿌리인지 부추뿌리인지 모를 것을 돈 주고 산 기분일 뿐이었다. 어찌 되었건 다육이들 곁에 듬성듬성 던져 놓았던 틸란드시아에 마음이 뺏긴 것은 며칠이 지난 어느 맑은 여름날이었다. 햇빛을 잔뜩 받은 틸란드시아는 은백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틸란드시아의 표면을 덮고 있는 이 미세한 솜털은 트라이콤이라 부르며, 이를 통해 공기 중의 수분이나 유기물을 흡수하며 살아간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이유로 먼지 먹는 식물, 물 안 줘도 안 죽는 식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알려진 대로 정말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것일까?
사실 트라이콤이 눈에 띄게 하얗게 변했다면 물을 달라는 표시로 생각하면 된다. 틸란드시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물을 갈구하는 식물이었다. 글쓴이 또한 틸란드시아를 들이기 전에는 '공중에 스프레이 몇 번만 해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말이다, 선인장이나 다육이도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이 많더라?
목마르다는 사람한테 물 스프레이 두어 번 해주고 말기?
아무리 환경과 종류가 다르더라도, 물을 주는 주기 자체는 천차만별이라도, 글쓴이에게는 다육이에게 물 주기 원칙이 하나 있다. 한 번 줄 때만큼은 듬뿍 주고, 화분 밖으로 물이 쭉쭉 빠져나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스프레이로 칙칙, 숟가락으로 찔끔, 얼마나 감질나겠나? 그래 놓고는 틸란드시아에는 다른 기준을 적용할 뻔했다. 틸란드시아 역시 한 번 줄 때 제대로 주면 되는 것이었다.
언제? 전체적으로 하얀색이 짙어졌을 때
어떻게? 하루 정도 미리 받아놓은 수돗물에 1~2시간 충분히 담가 둔다.
김 빠진 맥주나 막걸리 3~4방울을 물에 섞어 주면 영양제 역할을 한다는 조언도 있다.
주의할 점은? 제대로 된 건조와 환기는 필수!
물을 주고 난 후 제대로 말려주지 않아 과습으로 죽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한다.
이론적으로는 맞지만, 첫 물 주기 경험은 왠지 떨리는 것이 사실이다. 찾아본 정보대로, 1시간 정도 물에 담가 두었다가 꺼내서 통풍이 잘 드는 그늘에 두고 말려주었다.(걱정이 지나쳐서 선풍기를 틀어주었던 건 비밀이려나) 다음 날 아침 틸란드시아는 싱싱한 얼굴을 뽐내며 확실하게 자라 있었다.
물을 원할 때(왼쪽)는 축축 쳐져 있지만 물을 잘 마시고 난 후(오른쪽)에는 싱싱함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피드백이 좋은 식물에 대한 기특함과 잘 관리했다는 자신감이 차오르면 식구가 늘어나는 건 한 순간이다. 크기가 크고 유려한 느낌의 모양을 한 하리쉬, 가는 잎이 쭉쭉 뻗어 있는 형태의 스트릭타, 소형종의 미니 이오난사, 예쁜 꽃을 피운다는 푸에고 등 다양한 틸란드시아들이 새 식구가 되었다.
며칠 전부터 이오난사의 잎 끝이 빨갛게 변했기에 알아봤더니 꽃을 피우려고 준비하는 모습이라는 답을 얻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할 것 같아 마음을 살짝 감추고 있었는데 물든지 3일 만에 보라색의 꽃봉오리를 수줍게 올렸다.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온 첫 틸란드시아 꽃 덕에 녀석들에 대한 애정도가 확실히 깊어진 것 같다.
작은 베란다 정원은 오늘도 많은 식구들로 북적이며 긴 여름을 이겨내고 있다.
Epilogue
보라색 꽃봉오리는 저녁에도 쉬지않고 자라나더니 하루만에 축포같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다음날엔 두 개의 꽃을 선보이며 글쓴이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평생 한 번 핀다는 이노난사의 꽃을 이렇게 빨리 볼 수 있게 된 건 얼마나 멋진 행운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