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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워서갈비 Jul 22. 2021

매일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영업... 당해버렸어.


가끔 책을 읽다 아주 영업을 잘하는 책을 만날 때가 있다. 어떠한 도전을 하라던지, 어떠한 것을 사라던지, 어떠한 것을 정리하라던지. 자신의 경험을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이렇게 해봤더니 이러이러해서 아주 좋더라'라고 부추기는 책 말이다. 귀가 얇고 잘 혹하는 나는 그런 문장들을 만나면 갑자기 두 주먹에 힘이 불끈 들어가면서 당장 하고 싶은 지경에 이른다. 어서 이 도전을 시작해서 나도 저런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빨리 저 물건을 사야 해, 그동안 왜 저걸 몰랐지? 정리만 해도 삶이 심플해진다니, 게다가 저런 간단한 방법이라면 못할 것도 없잖아...? 등등 그 말에 잘 넘어가고 곧장 실행에 옮기는 편이다. 다만, 이 열정은 아주 화끈한 대신 아주 금방 사그라든다. 대부분지속가능한 열정 아닌 거다.


그렇게 지속불가능한 열정러인 나를 너무 잘 알아서였을까? (다른 글 이런 모순 덩어리! 참고). 최근에 읽은 책에 나온 매일 글쓰기 영업에 홀라당 넘어가고도 시작할까 말까 계속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 책은 김민식 PD의 <매일 아침 써봤니?>다. 경쾌하고 끈질기게 '매일 글쓰기'를 영업하는 책이다. 읽다 보면 당장 글을 쓰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해진다. 매일 쓰면 재미있고, 창의적으로 성장할 수 있고, 게다가 쓰는 건 공짜고 등등등 등등등의 좋은 점들이 무궁무진하다.



저는 매일 아침 블로그 글쓰기로 용기를 키웁니다. 글을 쓸 때 '이게 재미있을까?', '사람들이 이걸 보러 올까?, '이런 후진 글을 썼다고 흉보지는 않을까? 이런 고민은 하지 않습니다.
반짝이는 재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끈기입니다. (...) 오랜 시간 꾸준히 올린 글들을 통해 나의 생각이 드러나고 내 삶의 문양이 더욱 뚜렷해지기를 희망합니다.
'이게 과연 내가 쓸 수 있는 최고의 글일까?' (...) 조금 부족하더라도 끈질기게 매일 올려야 날마다 찾아오는 사람이 늘고, 보는 사람이 늘어야 신이 나서 글도 쓰고, 그래야 결국 글도 는다고 믿거든요.
- 김민식, <매일 아침 써봤니?>



잘 쓰려는 생각이 너무 강하면 의외로 글이 주눅 드는 경우가 있다. 내 안의 것을 다 펼치지 못하고 독자의 시선을 과하게 의식하는 것이다. 사실 나도 그런 편이다. 한 편의 글을 쓸 때 쓰는 시간보다 앉아서 재는 시간이 더 길다. 그래서 좋은 건 잘 알겠지만 '매일' 쓰기는 아무래도 부담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건 크게 문제가 안 된다고 말한다. 최고의 글을 블로그에 올리기보다는 조금 부족해도 끈기 있게 올리는 것이 더 멋지다고 말해준다. 그 과정 속에서 내 문양이 뚜렷해지고 글도 느는 것이라고.


또 다른 결정타 문장은 이 시대에는 '미디어의 소비자에서 (...) 생산자로 오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문장이었다.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가고 싶다는 말, 내가 여기 어디 브런치의 글에도 그대로 적어놓은 적이 있다. 그렇게 되려면 매일 써야 한다니, 혹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렇게 여러 날 동안 글쓰기 챌린지의 유혹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와중, 그 마음에 쐐기를 박은 책을 또 만났다. 이유미 작가의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이다. 이미 목차만으로도 나의 마음을 시원하게 긁어준 책이다.


대단한 걸 쓰려고 하지 마세요ㅣ지극히 사소한 것도 글감이 된다

우리에겐 다음이 있잖아요ㅣ가벼운 마음으로 쓴다

빨리 넘어가는 페이지도 넣어주세요ㅣ툭 끝나도 좋다


뭔가 쓰고 싶은데 모아둔 꼭지가 너무 적으니 다음에 쓰자. 좀 더 각 잡고 앉아서 쓰자. 이 글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지(의미 강박)? 종종 이런 생각을 하며 글쓰기에 임하는 나에게 이유미 작가의 목차는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걸었다. 저기, 힘 빼고. 사소한 것을 그냥 쓰세요. 다음에 더 잘 쓰면 되니까 가볍게 쓰세요. 모든 글이 의미 투성이지 않아도 돼요. 매일 글을 쓰는 것이 글의 퀄리티를 떨어뜨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네, 가볍게 써도 되는군요. 김민식 PD의 글이 '열쩡! 열쩡! 열쩡!' 이런 느낌이라면, 이유미 작가의 글은 마음을 부드럽게 릴랙스 해주는 느낌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카피를 썼을 때 어떻게 하는가?'란 질문에 저는 늘 같은 대답을 합니다. "내일 더 잘 쓰면 돼요." (...) 한 편 한 편에 너무 공을 들이고 엄청 잘 쓰려고 하면 앞으로 쭉쭉 나아가기가 힘들어요.
한 권의 에세이에서 계속 의미가 있는 글만 이어지는 걸 독자들이 좋아할까요? 오히려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습니다.
- 이유미,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글을 쓰는 것, 특히 매일 글을 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글을 수없이 갈고닦았을 저들 역시 부담감 있다지 않은가. 다만 그 부담감을 잘 요리해서 멋지게 글로 차려놓는다는 것이 나와 다를 뿐. 나 역시 브런치에 '나 매일 글 쓸 거다!'라고 써버리고 나일종의 선언이 될 것 같아 두려웠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다. 요즘 내가 이런 책들만 골라 읽었다는 것은 매일, 아니면 꼭 매일이 아니더라도 글쓰기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다는 내면의 소리가 비집고 나온 거란 걸.


또 다른 두려움은 시간 확보에 대한 것이었다. 매일 글 쓰는 시간 때문에 다른 책을 읽을 시간이 없으면 어쩌지? 다른 것들도 하면서 내가 글쓰기까지 다 할 수 있나? 아기가 아플 때는? 내가 몸이 안 좋으면? 이런 걱정들이었다. 하지만 유튜브나 인스타를 휙휙 넘기면서 버려지는 시간을 잘만 모아도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된다. 오히려 글에 넣고 싶은 문장을 찾다 보면 책도 집중해서 더 많이 읽게 될 수도 있다. 정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휴재(구독자는 없지만 이런 거 해보고 싶음)'하면 된다.




빠른 손꾸락으로 부지런히 써볼게요



그런 걱정은 떨쳐버리고 매일 글쓰기를 통해 즐겁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자. 매일 쓰는 게 그렇게 좋다고 하니, 어디 나도 ! 몸에 좋다고 하니 먹는 것처럼 비타민을 매일 챙겨 먹는 마음으로. 곰도 사람이 되었다는 기간, 한 100일 정도? 그저 초고를 쓰는 마음으로 가볍게. 자, 그럼. 매일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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