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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워서갈비 Jul 29. 2021

메시지로부터의 단절

때로 잘 단절되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 말과 글의 홍수 속에 파묻혀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으로부터 발신된 수많은 소리와 활자들 속에서 헤엄치는 느낌이다. 아침 7시, 눈을 뜨면 습관적으로 핸드폰부터 집어 들어 포털 메인에 접속한다. 수많은 기사들이 앞다투어 눈 속으로 돌진한다. 코로나 확진자 수, 뉴스 속보, 오늘의 날씨 등. 그 뒤로도 나의 하루는 끊임없이 메시지를 받아들이며 흘러간다. 팟캐스트를 청취하고 유튜브에 접속하며 책을 읽는다. 쉴 새 없이 메시지를 주는 세상. 사람들은 어쩜 이렇게 자신의 것을 사람들과 잘 공유할까. 어째서 혼자만 알기에도 아까운 사유와 통찰들을 기꺼이 알려주는 걸까.


좋은 메시지들은 내 안으로 들어와 머문다. 그러다 밖으로 나간다.  발신자가 것이다. 지금도 이렇게 메시지를 만들기 위해, 머리로 손가락으로 엉덩이로 문장들을 뽑아내고 있다. 그런데 너무 많은 메시지들이 들락날락하다 보니 어떤 것이 내가 생각해 낸 메시지인지 아리송하기도 하다.


어느 날, 정말 좋은 문장이 떠올랐다. 오오! 하면서 신나게 글에 썼는데 뭔가 싸한 기분에 검색창에 입력해보았다. 이잇, 이미 누군가의 소설에 비슷한 문장이 쓰인 것 같다. 물론 완전히 같진 않지만 타인의 것과 비슷한 메시지. 그건 내가 생각해낸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수히 투입된 메시지들 중 하나가 내 것인 척 튀어나온 것 아닐까?



김규림, <집에서 혼자 노는 법>



메시지로 범벅된 이 세계를 잘 누릴 수도 있지만 때로는 너무 피곤하다. 김규림 작가는 <집에서 혼자 노는 법>이라는 책에서 '노 와이파이 존'을 소개했다. 말 그대로 의식적으로 인터넷을 하지 않는 공간이다. 방이나 책상, 의자 어떤 곳이든 하고 싶은 대로 만들면 된다. 이곳에서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귀 기울여 보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외부로부터 오는 메시지를 차단하겠다는 선언이자 행위라고 생각했다. '디지털 디톡스'도 비슷한 맥락이다. 출근시간에 쫓겨 깜빡 휴대폰을 집에 두고 나온 하루, 불안하지만 은근히 홀가분했던 경험은 한 번씩 있을 것이다.


노 와이파이 존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잠시 열정적인 발신자들과 단절되어 보았다. 특히 핸드폰에 광적으로 자주 접속하기 때문에 멀리 감춰두었다. 심심해져서 잘 안 쓰던 옷장 서랍을 열었더니 작아진 아이의 옷이 있었다. 한해 더 힐 욕심에 크게 샀더니 바짓단을 두세 번이나 접어 입혀야 했던 옷. 그런데 어느새 이 옷을 입지 못하게 되었다니. 아이는 생각보다 정말 빨리 자라는구나. 아이가 어서 자라서 내가 좀 편해졌으면 싶었다가도 막상 훌쩍 자란 모습을 상상해보니 그건 또 아쉬웠다. 다시 아이 옷을 바라보니 내가 보였다. 막 엄마가 되었던 몇 년 전의 내가.


어슬렁어슬렁 다른 방으로 가다 책꽂이에 꽂힌 박사학위논문 프로포절 책자를 발견했다. 준비만 하다가 일단 멈춤 해버린 나의 박사학위. 1초를 아껴가며 분투했던 그 시절의 내가 겹쳐 보였다. 언제나 불안했지만 참 눈부시긴 했던 나. 그때보다 느릿느릿하고 무겁지만 좀 더 안정적인 지금의 나. 내 인생과 철학과 가치와 사유와 마음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나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존재 자체로 말없이 말을 걸어오는 것들도 있다.


작아진 아이 옷과 박사학위논문 프로포절





이번 주에는 '불멍'하면서 타닥타닥 소리와 매캐한 장작 냄새를 맡고 싶다. 아니면 분수대 앞에서 '물멍'이라도 해야겠다. 그럼 '내 안'에서 어떤 메시지가 우러나오는지 좀 더 세히 들여다볼 수 있을 것만 같다. 확실한 것은 때로는 메시지들과 단절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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