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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워서갈비 Jul 30. 2021

작은 반짝임들 길어 올리기

당신과 나의 아이디어

* 커버 사진 출처 : 김하나, <당신과 나의 아이디어>



2021년 7월의 어느 날. 160번 시내버스가 한강 마포대교 위를 지나고 있다. 넘실대는 물결 위로 쌍무지개가 뜨자 승객들의 핸드폰에서 연신 '찰칵'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버스를 몰던 강재순 기사가 룸미러를 슬쩍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오늘 마포대교 무지개가 참 예쁘죠? 사진 찍게 잠시 세울까요?


그 말에 30여 명의 승객들은 입을 모아 "네", "좋아요"를 외쳤다. 마침 거짓말처럼 버스 앞뒤로 차가 한 대도 없었다. 승객들은 30초 동안 무지개를 향해 연신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30초간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준 뒤,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그 후 버스 기사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게 뭐라고 이리 좋아하실까, 뿌듯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짠한 거예요. 그 느낌 아시죠?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요즘 다들 마음이 빡빡하셨구나. 참 좋더라고요.



'오늘 마포대교 무지개 예쁘죠? 버스 좀 세울게요' <머니투데이> 2021.7.26





요즘 하늘이 참 아름다웠다. 여름날의 하늘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미처 몰랐다. SNS 역시 각자의 하늘 사진으로 아름답게 물들었다. 무지개를 봤다는 증언(?)도 앞다투어 쏟아졌다.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내게도 와서 닿았다.


서울 마포대교 위에서도 좋은 것을 함께 본 승객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찰나의 추억을 만들어준 것은 버스 기사의 기꺼운 제안이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기사는 한번 더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을까?' 하고. 그리고 아름다운 30초를 만들어냈다. 문득 이것이 바로 '작은 반짝임'이 아닐까 생각했다. 김하나 작가의 <당신과 나의 아이디어>에서 이 단어를 처음 만났다. 저자는 작고 좁은 □□분식집에 네 명이 불편하게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었던 이야기로 설명을 시작한다.


… 아주머니가 테이블 끝을 잡더니 테이블 전체를 10센티미터가량 벽에서 떼어놓으셨어요. 그러더니 말씀하셨죠. "이러면 좀 낫지."
무언가를 가져와서 덧댄다던가 하는 번거로움도 없고, 테이블 하나가 10센티미터가량 돌출한다고 해서 복도의 통행에 크게 방해가 되지도 않죠. 비용이 더 든 것도 아니에요. 심플하고 우아한 아이디어입니다. 어떤 사람을 이걸 두고 '배려'라고 할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이것을 '아이디어'라고 부르겠습니다.
신기한 발명품이 있지도 않고 세상이 놀랄 만한 발상의 전환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분식 아주머니가 생각해낸 해결책에는 어떤 반짝임이 있어요.

- 김하나, <당신과 나의 아이디어>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작은 반짝임들. '와!' 하면서 감탄하게 되는 아이디어들. 천재들만이 어떤 대단한 창의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회에서 이런 반짝임들은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버스 기사의 행동을 단순히 '배려'라고 칭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디어'이기도 하다. 크게 무리했던 것도 없고 비용이 들지도 않았지만, 심플한 방법으로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이 광경을 보는 우리에게까지도. 어떤 현상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발견'하고 '주목'하는 힘이 멋진 아이디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창의성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깨에 돌덩이가 얹힌 것처럼 무거울 때가 많다. 논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면 낡고 틀에 갇혀버린 내 생각 회로를 원망했다. "젊은 친구들이 톡톡 튀는 아이디어 좀 내 봐." 이 말이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 없었다. 창의성이 애초에 흘러넘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창의성이라는 말에 사로잡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거대한 것을 창조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힐수록 창의성은 멀어져 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아주 작은 것들에서 반짝임을 찾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작은 반짝임들을 찾는 데에 꽤 도움이 되었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완전히 다른 생각들을 하나로 묶어보는 연습이다. 김정미 작가님께서 소개해 주신 <은유 훈련>이다. 전혀 다른 두 개의 단어를 랜덤으로 뽑아서 말이 되도록 문장을 만드는 것이다. 나는 '수제비'와 '손님'이라는 두 단어로 이런 문장을 만들었다.


수제비는 손님이다. 무심히 뚝뚝 떼어 만드는 수제비처럼 손님도 무심히 뜨문뜨문 찾아와 내 일상을 만든다.


'병아리'와 '코로나'라는 두 단어로는 '코로나는 교문 앞에서 팔던 병아리다. 언젠가는 우리의 추억 저편으로 사라질 것이기에.'라는 문장을 만들었다. 쉽고 간단하지만 해보면 정말 재미있고, 무엇보다도 뇌가 말랑말랑 해지는 것이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다른 하나의 방법은 이곳이 바로 처음 방문한 여행지라고 생각하면서 다니는 것이다. 매일 보는 집 근처의 풍경에서 어떤 작은 반짝임도 얻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지금까지 들어가 보지 않았던 가게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거나 물건을 산다. 이때 혼자 다니는 것이 좋다. 그러면 다른 자극은 사라지고, 풍경들이 유일한 발신자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얼마 전 레스토랑에 가서 혼자 식사를 했다. 가게 안의 공기, 소리, 풍경 이런 것들이 마치 외국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런 경험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창조성을 건드린다. 이 창조성은 건드려지고, 건드려지고, 건드려지다 마침내 어느 순간 다른 지점에서 아이디어로 툭, 나오게 된다. 게다가 이렇게 작은 반짝임들을 길어 올리다 보면 하루하루가 충만해질 수 있지 않을까.


'혼파(파스타)' 했던 이탈리안 음식점. 이곳에서 여러가지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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