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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워서갈비 Aug 02. 2021

퇴사 후의 인간관계에서 알게 된 것

우리는 시절인연을 겪는다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어지는 회사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밤새 면접을 준비하며 간절히 원하던 직장이었는데 사람 마음은 어쩜 이렇게 간사한지. 내가 앉고 싶었던 사무실 자리는 어느새 떠나고 싶은 자리가 되어 있었다. 한 여름 오래된 사무실 천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어컨은 텁텁하기만 했다. 연신 부채질을 해대며 아이스커피를 들이켰다. 얼음이 금세 녹아 밍밍했다.


다른 것들은 괜찮았다. 적당히 일을 하면 성과는 나왔다. 일도 그리 빡빡하지 않았다. 문제는 대장의 끊임없는 감시와 질투였다. 집착도 심했다. 직원들 위에 군림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친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그 모호함에 나는 자주 혼란스러웠다. 종일 기가 빨렸다. 퇴근하고 집으로 오면 시체처럼 누워 내리 잠을 자야 했다.


그런 직장 생활을 버티게 해 준 것은 윗 사수였다. 갓 입사했을 때부터 세상 다정하게 대해 주더니 회사에 들어간 지 일 년이 넘어갈 때까지도 점심은 누구와 먹는지를 챙겼다. 해야 할 일은 매사에 위트 있는 말투로 알려 주었다. 내가 실수를 했을 때는 비난하지 않고 먼저 나서서 일을 해결해 주었다. 그 후 나중에 뒤에서 차분하게 가르쳐 주는 식이었다.


"은정씨, 안녕!"


출근하는 나를 발견하면 먼저 인사를 기다리지 않고 쾌활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기분이 단숨에 좋아졌다.


"이것 좀 볼래? 내가 열심히도 안 했는데 이렇게 반가운 메일이 왔지 뭐야."

"우와. 정말요?"


나는 들고 있던 두 잔의 커피 중 한 잔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녀의 자리 곁에 서서 잠시 조용한 수다를 떨었다. 그녀와의 대화는 재미있었다. 오랜 직장생활로부터 체득한 특유의 유머가 그녀의 말속에 녹아 있었다. 유머라면 사족을 못쓰는 나는 그 유머러스함을 정말 사랑했다. 일상생활의 사소함이나 직장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도 사수와 나누면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하루의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공유하다 보니 서로의 관심사와 취향도 알게 되었다. 특정 커피 브랜드의 진한 카푸치노를 좋아한다는 것. 무언가를 모으는 취미가 있다는 것. 늘 같은 헤어스타일을 고수한다는 것 등등등. 매일 얼굴을 보며 웃고 이야기 나누다 보니 이제 그녀가 없는 회사 생활이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녀가 이직하면 나는 뭔 재미로 살까. 이런 생각을 하면 아득했다. 내가 회사 생활의 고단함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녀 덕분이었다.





그렇게 끈끈했던 사수와의 관계 나의 퇴사와 함께 끊어지고 말았다. 회사에서 만난 인연이니 퇴사와 함께 멀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것은 상실감이었다. 내 삶을 단단히 지탱해주던 관계의 해소가 주는 상실감. 평생 지속는 느슨한 관계보다 한때의 밀도 높은 관계가 누군가의 일생에 더 큰 영향을 주는 모양이었다. 끊어진 관계를 자꾸 생각하다 보니 알 수 없는 자책감마저 들었다.


내가 조금 더 노력했었다면 좋은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을 텐데. 옛 직장 동료와 그렇게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상실과 자책으로 뒤섞인 괴로운 마음은 퇴사 후 한동안 지속되었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만나기 전까지는.


ⓒ pexels and pixabay


시절인연(時節因緣)은 불교 용어로,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라는 뜻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다 한때여서 놓을 때에는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인연이 다한 것이기에 어떤 노력을 해도 돌아가기 어렵다. 누군가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인연이 해소되는 것이라니.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원래 그런 것이라니. 나는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그동안 많은 관계들에 감정적으로 집착하며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때 정말 친했던 친구들. 동고동락하며 힘든 시기를 보낸 동료들. 아무리 찬란했어도 끊어져 버린 관계는 결국 부끄럽고 숨겨야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모든 관계가 평생 유지되는 것도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다. 모든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과 에너지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남겨질 인연은 남겨지고, 그렇지 못한 인연은 해소된다.


모든 인연은 언젠가는 끝나거나 느슨해질 수 있다. 우리의 노력 여하에 관계없이. 이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순간순간마다 온 마음을 다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인연이 끊어져도 크게 속상해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인연들 역시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어느 한 시절에 만나는 인연


나는 이제 시절인연을 이런 의미로 생각한다. 나의 한 시절을 더없이 찬란하게 빛내주었던 인연. 길거나 혹은 짧았던, 그 시절 동안만큼은 세상 누구보다도 나를 빛나게 해 주었던 관계이다. 그래서 인연이 끝나도 그 시절의 나는 반짝이며 남게 된다. 사수와의 인연으로 나의 신입사원 시절은 단단하게 영글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의 고마운 인연을 시절인연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 pexels.com


PS. 사실 사수의 메신저 프로필에서 시절인연이라는 말처음 보았다. 퇴사 후 끊어진 인간관계로 괴로워하던 그즈음에. 나는 그녀가 한 시절의 인연을 잘 떠나보내는 방법을 내게 마지막으로 가르쳐 주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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