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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워서갈비 Aug 10. 2021

아이가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착각

뜻대로 안 되는 것도 경이롭다

 

아이와 김밥집에 갔다. 김밥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아이가 괜한 심통을 부리기 시작했다.


"김밥 빨리 줘!"
"지금 아주머니께서 말고 계셔. 좀만 기다리자."
"아니야! 안 말고 계셔!"


곤란하시겠다 싶어 아주머니를 쳐다보며 사과의 의미로 눈을 찡긋하니 "열심히 말고 있어~" 라며 웃으신다. 그러나 아이는 울음을 터뜨린다. 자꾸 김밥 빨리 달. 그런데 김밥이 나오자 아이는 또 이렇게 말한다. "나 안 먹을 거야!"


좁은 가게 안에 포장 주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일제히 헛웃음을 지으며 나를 쳐다본다. "허이구야..." 아마 뒤에 올 말은 '엄마가 힘들겠네' 정도가 아니었을까.


죄송하고 민망한 마음에 김밥집을 얼른 나오는데 가슴이 뛰고 머리가 부글거린다. 집에서야 그렇다 치고 공공장소에서 진상(?)을 부릴 땐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아이는 어쩌면 이렇게 뜻대로 안 따라줄까. 이런 행동이 하루에도 몇 번이고 반복되다 보니 아이에 대한 원망이 커져 갔다. 내 머릿속은 이런 질문들로 가득 채워졌다.


"정말 왜 저럴까?"
"왜 이렇게 뜻대로 안 될까?"
"왜 저렇게 자기주장이 셀까?"



그러다 "아이가 꼭 내 뜻대로 되어야만 하나?"질문이 바뀌는 지점을 만났다. 도서관을 갔다 우연히 제목에 이끌려 집어 든 책 한 권. 박혜란 작가의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이었다. 저서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로 유명한, 가수 이적을 포함한 세 아들을 모두 서울대에 보낸 어머니로 유명한 박혜란 작가. 아마 이 책을 예전에 읽은 적이 있던 것 같은데,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말이야...'라고 운을 뗀 '할머니'는 우리에게 어떤 묘수를 전해줄 수 있을까? 궁금했다.


나는 책을 읽어나가다가 마치 성경의 한 구절처럼,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한 문장을 만나게 되었다.


박혜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아이가 내 뜻대로 된다고 자랑 말고, 아이가 내 뜻대로 안 된다고 걱정 말라. 반대로 아이가 내 뜻대로 된다면 걱정하고, 아이가 내 뜻대로 안 되면 안심하라. 가장 걱정해야 할 문제는 아이에게 뜻이 없다는 거다.



오히려 아이가 뜻대로 되면 걱정하라니. 말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어이없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머리로는 그걸 알아도 아이가 뜻대로 되는 것이 좋지,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좋을까? 언뜻 생각하기에 지금껏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양육자 뜻에 어긋나길 바란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한참 곰곰이 생각하니 그랬던 적이 있었다. 바로 산후조리원에서였다.


갓 태어난 아이를 신생아실에 맡겨 놓고 밤에 누워 있으면 잠은 안 오고 오만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있던 방이 신생아실 옆이라 그랬을까. 어떤 아기가 '앵' 울면 '혹시 우리 아가일까?' 그런 생각만 들었다. 정확히는'우리 아가였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었다. 배고프거나, 쉬를 했거나, 자리가 불편하거나 하면 '앵'하고 울어주기를 바랐다. 너무 순한 아기는 잘 들여다보지 않을까 봐. 간호사들이야 아기들이 얌전히 자 주기를 바랐겠지만, 나는 아이가 양육자 뜻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아이의 행동이 달리 보였다. 아이는 나름의 최선을 다해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고 있다. 그냥 신생아 때 '앵'하던 것이 '싫어'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때는 그러길 바라고 지금은 그러지 않길 바라다니 거야 말로 모순이다.


머릿속 질문도 달라졌다. 내가 아이의 뜻을 죄다 기를 쓰고 꺾는 것이 맞는 건가? 그랬다가 정말 하나에서 열까지 순종적인 아이로 자라면? 옷도, 직업도, 결혼 상대도 전부 골라 달라고 하면, 과연 나는 행복할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차라리 뜻대로 안 되는 게 더 나은 것 같기도 했다. 어느새 커서 아침에 내가 골라준 옷은 싫다며 자기가 고르질 않나. 입맛도 분명해지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도 생기질 않나. 이것저것 훈수 두면서 잘난 척하질 않나. 엉뚱하고 놀라워서 크게 웃을 일이 많기는 하다. 확실히 뜻대로 안 되는 아이 키우기가 더 재미는 있다. (그날 저녁, 또다시 불같은 자기주장의 시간을 겪어내면서 '재미가 너무 과한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정세랑 작가가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에서 말했듯이, "경이를 경이로 인식할 수만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것들이 특별해질 것이다." 책 속 다른 맥락에서 나온 문장이지만, 나는 이 말이 아이와 관련된 것으로 읽혔다. 나는 그동안 얼마만큼의 경이로움을 놓친 걸까. 아이가 뜻대로 안 되는 경이로움을 매일 찾아낸다면 우리는 하루하루를 조금 더 특별하게 보낼 수 있을까. 아이와 나 모두 서로를 뜻대로 하려는 착각도 편견도 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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