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봉규 PHILIP Jul 13. 2022

[삼삼한] 공부·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한봉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안다는 것이다.” 논어 위정 편 17.


책을 읽으면 공부를 해야겠다 싶고, 공부를 하려고 하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싶다. 역사 책을 읽으면 틈틈이 기록하라 하고 철학 책을 읽으면 사유하라 하고 자기계발 서를 읽으면 목표를 세우라 하며 경영서를 읽으면 당장 회사를 설립해야 할 것 같다. 공부의 길이 너무 많다. 


한데 공부를 왜 하려고 하느냐 자문하면 순간 멍해진다. 평소 깊이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부 목적이며 까닭을 더 해 물으면 지지배배 지저귐이 즐거운 세 치 혀가 얼음에 닿은 것처럼 냉랭하다. 다만 공부하는 목적과 까닭 없이 하는 공부만큼 허망한 일은 없다는 점을 알고 있는 것은 나름 희망적이다. 하지만 답답하기 그지없다. 


지금 필요한 내 공부는 무엇일까. 뒹굴뒹굴하다 짜증도 나고 해서 집 밖으로 나왔다. 용무가 있고 목적지가 있어 나온 참이 아니어서 발 없는 말이 천리 가는 그 뒤를 쫓아 그냥 걸었다. 일이 천 보 즈음 걸으니 그럭저럭 걸을 만하다. 한데 지루하다. 재밌고 새로운 거리가 많으면 좋겠다 싶어 이번에는 팟캐스트를 켜고 걷는다. 걷는 일이 덜 지루하고 수월도 하다. 동무와 얘기하며 걷는 착각이 이런 기쁨을 내게 안겨주는 가 싶다. 동네 한 블록을 도는 일이 순식간이다. 한데 방금 전 내가 어디를 갔다 왔지 거기는 왜 갔다 온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공부에 대한 답답함과 짜증을 좀 풀어 볼 심산으로 나온 일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의구심은 당황스럽다.  


적어도 한 가지 일은 풀었다. 짜증 말이다. 한데 공부는 무엇이고 왜 하고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다. 분명 방금 내가 어딘가를 다녀오긴 했는데 갔다 온 그곳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둔함이 이 갈증의 또 다른 궤라면 궤이다. 하지만 내가 다녀온 곳에 대한 일은 걷기 기록 어플케이션으로 해결할 수 있다. 아, 순간 공부도 기록을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 괜찮은 아이디어다. 남은 일은 어떤 공부를 기록할 것인가이다.  


우선 여기저기 찾고 탐문한 결과 기록의 대명사는 역사였다. 그중 으뜸이 사마천이 쓴 사기였다. 곧바로 책을 빌리고 전문가 강연을 찾았다. 수없이 많은 정보가 유성우처럼 쏟아졌다. 갈증에 단비가 내렸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바로 그쳐 버렸으니까. 그 까닭은 뭘까. 생각해 보니 두 가지가 떠올랐다. 하나는 얕게 들어가서 얕게 나온 탓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를 지식으로만 대한 탓이었다. 시험 볼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역사를 외우는 이 습관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이 놀라웠고 창피했다.


얕게 들어가서 깊이 있게 나와야 한다는 한국사마천학회 김영수 교수 말씀을 곱씹었다. 공부는 모름지기 그래야 할 것 같다. 또한 공부는 마음을 써서 하는 일이었다. 그래야 선하고 논리 정연한 공부가 된다. 사기를 쓰기 시작한 사마천의 비장함은 내게 없을지라도 내 마음이 공부를 쫓는 데 부끄럼 없이 공부의 길을 가야 재밌고 즐겁기 때문이다. 사마천이 백이와 숙제의 고상함을 두고 각종기지(各从其志) 즉, 저마다 자기 의지에 따라 행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얕게 공부를 시작한다. 또 문제를 만났다. 깊이 파고 나오는 일이 설익은 땡감을 입에 댄 느낌이다. 몸이 의지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이 일은 어찌할까. 꾀를 냈다. 점과 점을 연결하면 선이 생기 듯 얕게 들어선 일과 깊이 파고드는 일 두 점을 이어주는 뭔가를 찾은 끝에 만보 걷기를 끌어왔다. 걸으면서 읽고 보고 듣는 것이다. 간간이 땀을 말릴 겸 커피를 앞에 두고 종아리의 고단함을 식히면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으로 여겼다. 이 일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좀처럼 깊이 파고들지 못하고 그냥 스마트폰 세상 속으로 빠진다. 해찰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더 중한 것은 알고 모르는 그 경계가 불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공부라는 소크라테스 말을 위안 삼았지만 역시 속 시원하지 않다. 이 일은 또 어찌할꼬. 내가 모르는 것은 무엇일까. 게다가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은 또한 무엇일까?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온 두 질문에 무릎을 탁 쳤다. 바로 이것이다. 얕게 들어가서 깊이 파고 나오는 길목에 질문의 등대를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만보 중간 즈음 자리에서 숱한 질문을 쏘아 올리고, 돌아오는 길 위에서 얻은 답변을 책상에 앉아 오늘 내 공부를 촉발한 사건은 무엇이었고, 어떤 것이 궁금했고 스스로 찾은 답은 무엇인지를 글로 써 기록으로 남기면 근사한 일이 되겠구나 싶다. 느낌이 팍! 전율이 좌르르 흘렀다. 바로 이 글이 그 공부는 무엇인가? 왜 해야 하고, 어떻게 시작하는가를 알리고 있다. 걷고 읽고 보고 듣고 질문 뽑고 답을 내고 글로 남기는 이 칠성이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기개를 높이는 내 공부 목적이고 까닭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논어 위정 편 17).  



#공부 #아는것 #모르는것 #공자 #소크라테스 #사마천 #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