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에집중하라] 세렌디피티
지구에서 생긴 일 write ny 연작가
by 한봉규 PHILIP Jan 30. 2020
<좌: G6-2 서가, 우: D18 서가, 교보문고 합정점>
'우연한 끌림으로 구입한 책'이라고 운을 뗐다.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우연이 아니라고도 했다. #에뛰드 에서 마케팅을 한 내 이력을 보고 놀라워 한 것이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만 해도 포스팅한 분이 에뛰드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가 싶었다. 하지만 자신을 '마몽드'와 '이노센스 트윈케익' 세대라고 했고, 에뛰드는 꽤 관심을 뒀던 브랜드인 것으로 보였다(https://www.instagram.com/p/B7pbo51FyYf/?utm_source=ig_web_copy_link). 여하튼 간에 글 쓰신 분의 어떤 각별함이 내 책을 구입한 까닭과 무관하지는 않아 보였다. 곧바로 나는 감사 인사를 전했고, #지구에서생긴일 을 필연적 끌림으로 구매하겠다고 답글을 썼다.
교보문고 합정점에서 #연작가 를 검색하고 D-18 책장에서 '지구에서 생긴일' 책을 꺼냈다. 우연한 끌림으로 내 책을 사 준 이에 대한 필연적 끌림이다. 두 책의 우애를 다지기 위해 G6-2 서가에서 한 컷을 찍었다. 실은 내 책도 사려고 했다. 선물용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권쯤은 여기 두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서가 옆 독서대에서 많은 사람이 앉아 책을 읽는 모습 때문이다. 내가 오늘 이 책을 사면 며칠은 묵혀뒀다 선물로 쓸 것이다.
하지만 여기 그냥 두면 내가 묵혀둔 날 만큼 누군가 내 책을 꺼내 읽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옳거니 할 수도 있고, 어느 날은 책 구석구석을 누비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는 지적 향연을 만끽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다. 물론 그렇게 책이 바래 반품을 할 수 있지만 여러 사람이 자주 내 책을 읽는 수고를 기다리는 편이 더 나은 일 같았다.
인스타그램에 답례 포스팅을 하려고 준비하던 중 웃음이 빵 터지는 일이 생겼다. 우연한 끌림으로 내 책을 구입하신 분은 연작가 님이 아니었다. 사연은 이렇다. 감사 인사를 전한 내 답글에 포스팅을 한 분이 '오늘은 요기로 고고'라는 글에 연작가 님 계정을 태그 했다. 이 태그 계정을 본 나는 '작가 님은 계정을 두 개 쓰시는가 보다. 하나는 책 내용을 소개하는 계정이고, 다른 하나는 일상을 알리는 계정이구나!'라고 착각한 것이 오늘 내가 책방을 가고, 우정 컷을 찍는 에피소드를 만든 셈이다.
내 책을 든 사진을 포스팅하신 분이 나는 연작가 님이고, 작가는 계정을 두 개 사용하는구나 착각한 것이다. 아, 이런 세렌디피티가 또 있을까 싶다. 여하튼 간에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연작가 님 책을 손에 쥐었다. 아담한 책 크기에 가는 펜 글씨는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봄바람처럼 불었다. '마치다' 시편을 읽을 때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고, '고생했다 / 나의 사랑아'라는 구절에서 나는 단내가 다 빠져 너덜너덜 해졌음에도 뱉을 수 없는 내 오랜 껌딱지를 떼도 될 것 같았다. 이 시구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소장 가치가 충분했다. 오래오래 아낄만 한 글귀를 얻은 셈이다.
포스팅을 하신 분이 '솔직 담백 연언니의 매력에 빠져보세요~'라는 말을 남긴 까닭도 자연스레 이해했다. 아마 김구 선생님도 이 책 '지구에서 생긴일'을 읽으셨다면 독립운동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 재기 발랄하고 새초롬한 시어들이 가득한 책이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우연한 끌림'으로 시작한 한 편 포스팅이 만들어 준 이 세렌디피티, 글 쓰신 분이 연작가 님에게 가는 무지개다리를 내게 놔 준 듯 설렌다. 1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