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gène Manet on the Isle of Wight, 1885 © Musée Marmottan Monet, Paris.
벚꽃이 폈을 때 이별인 줄 알았고, 벚꽃이 졌을 때 그 사람, 떠난 줄 알았다.
꽃잎으로 와서 귓불 어느 근처에서 속닥속닥였을 때만 해도 봄은 정말 눈부셨다. 그렇게 아름다운 날은 또 없었다. 창밖에서 그 사람은 그림처럼 쏟아지는 햇살이었다.
그림 ‘와이트 섬에서 외젠 마네’ 1875년 베르트 모리조 Berthe Morisot(1841 - 1895) 작품이다. 에두아르 마네의 뮤즈였던 모리조, 한데 그의 동생 외젠과 결혼했다. 작품 속 남자이다.
에두아르와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반항심였을까? 하지만 외젠은 모리조의 속마음이야 어찌 됐건 그녀의 작가 활동을 평생 뒷바라지했다.
외젠의 한결같은 사랑에 반한 것일까, 모리조의 인상주의 소재는 딸 줄리의 일상과 남편, 여성의 삶이 대부분이었다.
이중 아이의 성장 과정을 작품 소재로 삼은 것은 모리조가 최초라고 할 만큼 많은 작품을 남겼다. 요즘으로 치면 아이의 성장기를 사진으로 찍어 SNS에 기록으로 남길 만큼 말이다.
하지만 줄리가 16살이 되던 해, 모리조는 장티푸스로 생을 마감하고, 외젠 역시 사망한다. 고아가 될 뻔한 줄리는 르누아르가 후견인이 되어 돌봤다고 한다.
베르트 모리조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여성으로써의 삶을 거부한 여성’, 그런 모리조의 진보적인 생각은 인상주의와 잘 어울렸다.
자유분방한 붓놀림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표현력과 묘사가 그랬다. 그중 줄리를 그릴 때마다 나타나는 투명감은 모리조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정도이다.
이 4월에 베르트 모리조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다. 특히 딸아이 줄리 마네와 남편 외젠 마네가 함께 있는 그림을 보면 모리조가 그 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단번에 느낄 수 있다.
가족을 바라보는 모리조의 시선을 느꼈을 때 나는 정말 행복했다. 그림 속에 숨겨둔 모리조의 어떤 메시지를 백 년이 지나서야 나만이 발견한 기분이었다.
외젠 마네가 모리조를 위해 일생 동안 뒷바라지를 한 까닭을 알 것 같았다.
▷ 베르트 모리소 작품을 연도별로 매우 잘 정리한 웹사이트
https://www.meisterdrucke.uk/artist/Berthe-Moriso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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