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에집중하라] 마케팅 경험담

by 한봉규 PHILIP


조미진작가.20191226..jpg 조미진 작가. 20191226. facebook.com/mijin1203


마케팅은 그야말로 전투다. 1%의 시장점유율 고지를 둔 공방전이다. 한 계절을 먼저 살고, 악마를 만나는 것도 두렵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 매일 회의를 하고, 매일 시장조사를 한다. 오로지 상품 타깃 층만 본다.


그런 날 중 어느 날은 소비자 행동 조사에 나선다. 한 분이 매장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가 시작이다. 가장 먼저 어떤 상품을 손에 쥐는지는 중요하다. 왜 그 상품이 우리 제품이 아닌지도 묻곤 한다. 꽤 전문가인 양 포커스 그룹 현장 인터뷰(FGI)도 한다. 매장 내 판매원도 FGI 대상이다. 그렇게 경쟁사 제품 정보를 한 보따리 넉넉히 싸들고 나서야 시장조사는 끝난다.


신제품 발매 날이 다가오면 마케팅은 되레 고요하다. 그 흔한 뒷담화조차 잦아든다. 마치 하나 둘 셋 땅! 소리와 함께 튀어나갈 태세를 갖추는 듯하다. 핵심 논제를 좁힐 만큼 좁혔음에도 좀처럼 결정을 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도 있다. 핵심 상권에선 프로모션으로 기선 제압을 해야 하고, 경쟁사가 소스라치게 놀랄만한 우리 제스처가 있어야 시장점유율 0.1%라도 올릴 수 있다. 초반은 기세 싸움이다.


하지만 슬픈 예감은 없었는데 문제는 수시로 발생한다. 주요 부서 장들이 끝장 토론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프린터는 밤낮없이 데이터를 기록한 복사물을 뿜어낸다. 그 소리가 착착 리드미컬하면 회의는 긍정적이다. 만에 하나 잉크가 떨어졌다거나 복사지 물리면 내일 또 회의다. 물론 이건 징크스이다. 정작 중요한 결정을 하는 회의실은 용호상박이라고 쓰고, 난리통이라고 읽는다.


뻔한 인과관계는 상사 직감으로 뒤엎어진다. 때로는 데이터가 뭇매를 맞곤 한다. 촉각을 다툰다고 다그칠 때는 언제고 밥 먹은 후에 원점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말을 들으면 침묵이 답이다.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만큼 나를 위로해 주는 말도 없다. 양보는 미덕이 아니었다. 양보하는 순간 짊어져야 할 책임이 무겁기 때문이다.


영업 부원들 목소리에 취기가 섞여 있으면 특단의 보상이 필요한 시그널이다. '잘했다' '수고했다'라는 말은 매일 들어도 지겹지 않지만, 보상 감으로는 적절치 않다. 시장점유율이 오른 것인가. 아니다. 이 데이터는 좀 기다려야 얻을 수 있는 데, 영업부는 신제품 출시 후 7일 이내에 촉으로 제품 승패를 가름한다. 한데 이 감이 거의 맞아떨어지고, 그때마다 나는 가끔 주저앉곤 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 기괴한 경험을 한다.


오감으로 말하는 소비자, 촉으로 시장 판도를 때려 맞히는 영업부 틈 사이에서 사실과 허구를 가리는 일이 마케팅의 묘미이다. 이 묘미는 늘 내겐 각성제였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헷갈리는 소비자 진심이 있다. 진심인 듯싶다가도 변심하고, 변심한 이를 붙잡는 일은 정말 고된 체험이었다. 하지만 헛발질 횟수는 세밀한 분석과 정비례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분석이 깊을수록 데이터는 정밀하고 세련미가 넘쳤고, 뜻밖이지만 오감과 촉이 말하는 진실이 무엇인지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애매모호한 점은 있지만 그들이 떨어뜨린 별똥별이 어느 곳에 머무는지 그 장소쯤은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것이 수확이었다.


새롭게 안 마케팅은 감과 촉과 데이터의 황금비율을 제조하는 연금술사여야 한다. 한데 그 비율은 언제나 전설로만 전해진다. 기이한 현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전설만 한 것이 없다는 점도 마케팅이 내게 안겨준 혜안이었다.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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