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곡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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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 파릇파릇 생생한 잎들. 너울너울 춤추는 한낮 일요일. 빈둥빈둥 대다 해질 녘쯤 전남 곡성 서봉마을 할머니들이 쓰셨다는 시 편을 읽는다.
'시집살이가 詩(시) 집살이'가 된 이야기. 뽀실 비가 오면 곡식이 펄펄 난다는 박점례 할머니 시. 어렸을 적 고무신 걸음으로 다녀가셨던 외할머니 발자국 소리 같아 반갑고 포근하다.
뽀실비
이슬비가 뽀실뽀실 온다
뽀시락뽀시락 비가 온다
끄급하니 개작지근하다
온 들에가 다 떨어진다
온 곡식이 다 맞는다
곡식이 펄펄 살아난다
시원허니 좋다
박점례
외할머니가 집에 오신 날은 상(床) 받는 날이었다. 동생들과 내 백일·돌·생일 상 말이다. 간혹 이틀 정도 머무시는 날이 있었다. 메주 쑤는 날이다. 한 해 장맛은 '콩'이라시며 엄니와 온종일 콩을 고르러 다니시고, 끓이고, 식히고, 빻고 나서야 메주를 쒔다. 도귀레 할머니 시 '릴레이'를 읽고서야 우리 집은 김장이 먼저였구나 싶었다.
릴레이
메주 쑤고 나면
무시 캐야제
무시 캐고 나면
싱건지 담고
싱건지 담고 나면
배추 캐야제
배추 캐고 나면
김장해야제
도귀례
그리고는 설날에나 외할머니를 뵐 수 있었다. 그렇게 몇 해를 보내고 또 이렇다 할 추억 없이 몇 해를 보냈다. 분당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그 뒤로는 통 뵙지 못했고, 첫 직장을 잡고서야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그 날이 얼마나 오랜 기간였는지 외할머니 머리에는 사박사박 내린 흰 눈을 고스란히 쌓아 두셨다. 하지만 무릎 꿇고 양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으신 채로 조곤조곤 말씀하시는 모습만은 변치 않으셨다. 이 모습이 외할머니 시집살이였을까.
시집살이
헌 소리 또 하고
헌 소리 또 하고
시할매는
쇠담뱃대를 저녁마다
따앙 땅땅 따앙
밤새도록 때리고
시어매는
흥 인자도 멀었다
나만이로 할라믄
아직도 멀었다
조남순
외할머니는 "그 정도면 됐다" "괜찮다"며 메주를 쑬 때, 김장을 할 때, 설날에도 엄니 말을 다 듣고는 늘 똑같은 말을 하셨다. 어른들 말은 늘 그런갑다 싶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무엇이 '그 정도면 됐다는 것은 무엇이고' '무엇을 두고 그리 괜찮다'라고 하신 것일까 싶다.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이젠 됐다"라는 말씀까지 말이다. 윤금순 할머니 시를 빌어서야 외할머니 말 뜻을 깨달았고, 사뿐사뿐 내리는 눈물이 '잘 살고, 잘 견딘' 날을 따라 흐른다.
눈
사박사박
장독에도
지붕에도
대나무에도
걸어가는 내 머리위에도
잘 살았다
잘 견뎠다
사박사박
윤금순
"서봉마을 시인 할매요~ 고맙습니다. 외할머니가 하신 말씀을 이제야 깨치고 알아먹었습니다···."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