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쓰는 물건은 정리해야겠다고 며칠 전부터 마음먹었다. 한 번에 신속하게 처리하자는 원칙까지 만들었고, 사전답사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게 있었나" "이게 여깃었네" 혼잣말을 하는 순간 다시 보관이다. 이걸 어쩐다.
한 사진작가는 사진 전시회가 좀 더 재밌었으면 좋겠다며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전시된 사진 사이사이 간격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며 작품을 보라는 것이다. 사진은 상상 예술이라고 했다.
옳거니, 이 방법을 써야겠다. 물건 사이사이 이야기가 끊기면 모두 버리는 것을 기준 삼았다. 차 트렁크 안 물건을 모조리 꺼냈다. 한눈에 버려도 후회 없을 것들 빼고 애매한 추억에 기댄 것들을 골라 사진 작품 마냥 나열했다.
바람막이 점퍼, 헌책방에 있어도 나무랄 데 없는 철학개론 책, 스프레이용 선크림, 3000원 주고 산 편의점 우의, 차량용 실내 청소기가 주인공이다. 한데 생각만큼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야기를 만들 때까지 내려다볼 만한 일도 아니다. 어떻게든 마무리는 지어야지 싶어 떠 오른 생각이다.
봄날 불청객 황사. 이 바람막이 점퍼를 어떤 이가 입고 있으면 모래알도 튕겨낼 점퍼일 수 있고, 철학이 물러나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진리를 탐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는지 모른다. 재활용으로 거듭날 선크림 용기와 우의, 차량용 실내 청소기도 모두 새롭게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버리는 데 간신히 성공했다. 이래서 안 쓰는 물건 정리할 때는 눈 감고 서랍 채 쓰레기봉투에 담아야 한다고 말을 실감했다. 차 트렁크 안은 깨끗한 구두처럼 광이 나는 듯했다. 쌓아 뒀을 때 보다 버리고 나니 참신하고 새롭다.
이 새롭다는 느낌을 사진작가는 작품 사이사이 간격을 이야기로 채우는 방식을 썼는가 싶었다. 반면에 나는 버리고 난 후에야 새로운 일을 할 계기를 만든 듯싶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채워뒀을 때 심란해서 버려서 얻는 거나 채워야만 얻는 일이 똑같으니 하는 말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삶은 이렇게 맞물려 돌아가는 단순한 이치였고, 그 이치를 사람은 저 마다 재능을 부리며 누리는 기록을 남기면서 깨닫는 듯 싶었다. 나는 쓰는 일로 사진작가는 사진을 남기며 말이다. 그건 그렇고 버리기로 마음먹은 것은 쓰레기봉투 열고 눈 감고 통채로 붓는 것이 맞다. 그러고 보니 여기도 내가 비우면 봉투는 채워지네! 하, 거참~. 8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