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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봉규 PHILIP Mar 15. 2020

[삼삼한] 물건 버리기

Dominique Steffens. EXPRESS YOURSELF: Smash (H)it. Saatchi Art.


안 쓰는 물건은 정리해야겠다고 며칠 전부터 마음먹었다. 한 번에 신속하게 처리하자는 원칙까지 만들었고, 사전답사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게 있었나" "이게 여깃었네" 혼잣말을 하는 순간 다시 보관이다. 이걸 어쩐다.


한 사진작가는 사진 전시회가 좀 더 재밌었으면 좋겠다며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전시된 사진 사이사이 간격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며 작품을 보라는 것이다. 사진은 상상 예술이라고 했다.


옳거니, 이 방법을 써야겠다. 물건 사이사이 이야기가 끊기면 모두 버리는 것을 기준 삼았다. 차 트렁크 안 물건을 모조리 꺼냈다. 한눈에 버려도 후회 없을 것들 빼고 애매한 추억에 기댄 것들을 골라 사진 작품 마냥 나열했다.


바람막이 점퍼, 헌책방에 있어도 나무랄 데 없는 철학개론 책, 스프레이용 선크림, 3000원 주고 산 편의점 우의, 차량용 실내 청소기가  주인공이다. 한데 생각만큼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야기를 만들 때까지 내려다볼 만한 일도 아니다. 어떻게든 마무리는 지어야지 싶어 떠 오른 생각이다.


봄날 불청객 황사. 이 바람막이 점퍼를 어떤 이가 입고 있으면 모래알도 튕겨낼 점퍼일 수 있고, 철학이 물러나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진리를 탐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는지 모른다. 재활용으로 거듭날 선크림 용기와 우의, 차량용 실내 청소기도 모두 새롭게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버리는 데 간신히 성공했다. 이래서 안 쓰는 물건 정리할 때는 눈 감고 서랍 채 쓰레기봉투에 담아야 한다고 말을 실감했다. 차 트렁크 안은 깨끗한 구두처럼 광이 나는 듯했다. 쌓아 뒀을 때 보다 버리고 나니 참신하고 새롭다.


이 새롭다는 느낌을 사진작가는 작품 사이사이 간격을 이야기로 채우는 방식을 썼는가 싶었다. 반면에 나는 버리고 난 후에야 새로운 일을 할 계기를 만든 듯싶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채워뒀을 때 심란해서 버려서 얻는 거나 채워야만 얻는 일이 똑같으니 하는 말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삶은 이렇게 맞물려 돌아가는 단순한 이치였고,  이치를 사람은  마다 재능을 부리며 누리는 기록을 남기면서 깨닫는  싶었다. 나는 쓰는 일로 사진작가는 사진을 남기며 말이다. 그건 그렇고 버리기로 마음먹은 것은 쓰레기봉투 열고  감고 통채로 붓는 것이 맞다. 그러고 보니 여기도 내가 비우면 봉투는 채워지네! , 거참~. 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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