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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봉규 PHILIP Mar 18. 2020

[삼삼한] 도시 만들기

Fiona Phillips

 Wind Dancer. 2017. artfinder.com


빨래가 흔한 동네 풍경이었던 적이 있다. 옥상에 나부끼는 하얀 빨래는 거룩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취를 감췄다. 아파트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풍경이 사라진 자리에 사생활이 자랐고, 빨래방은 새로운 풍경이 되었다. 동네가 도시로 큰 것이다.


도시로 발전한 것은 자랑삼을만하다. 하지만 간혹 버스에서 내려 본 동네 표정은 아찔하다. 오싹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곳이 단순히 사라졌기 때문일까. 이런 기분이 드는 까닭은 뭘까.


둥글고 높고 낮았던 오밀조밀 삐죽빼죽 동네 골목길이 평평하고 편리한 직선과 사각형 도시가 됐기 때문이다. 안정감은 얻어지만 새 공간은 추억을 쫓아냈다. 일상이 팍팍한 느낌도 이 때문이고, 마음이 자주 아프고 짜증이 잦은 이유도 이 때문인 듯싶었다.


뭣을 탓하자는 거리 찾는 일은 무표정한 도시인으로 사는 것이다. 해서 공원 벤치에 걸 터 앉아 든 생각은 지금부터라도 말이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서 집 앞까지 오는 10여 분 시간 동안 내 발길 닿는 곳에 이야기를 심으려고 한다.


인기척이 달라진 여기 꽃과 나무를 친구 삼은 이야기, 고래고래 울분 토했을 자리의 안타까움을 위로한 흔적, 이별을 슬퍼하는 초승달이며, 거룩하게 나부끼는 풍경 없어도 내 삶을 간질이고 도망하는 바람과 숨바꼭질 얘기 정도라면 밥맛이 제대로 날 것 같다. 이렇게라도 하다 보면 내 도시 표정은 점점 생동감 넘칠 것 같다. 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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