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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봉규 PHILIP Mar 28. 2020

[삼삼한] 기분 내기


지하철 입구로 빠져나오자 태양이 제일 반겨준다. 기분이 좋다. 태양은 비춰주고, 밝혀주고, 따듯하다. 에너지를 만들어 몸을 정화시켜 주고 마음은 치료해 준다. 어둠 속 정체를 드러나게 한다. 정체가 밝혀지니 존재가치를 알았다. 움직임에 따라 강약에 따라 곁에 두거나 거리를 둔다. 세상을 구별할 수 있는 힘을 태양이 내게 준 것이다


모퉁이를 끼고돌면서부터는 땅을 밟는다. 근면하고 성실한 땅은 모질고 추운 겨울을 언제나 잘 견딘다. 성실하다. 게다가 원칙에 벗어나지 않는다. 이럴 때는 답답하다. 하지만 오감(五感)이 흡족한 생명력을 늘 같은 계절에 내게 보낸다. 궁극에는 나를 따듯하게 품어줄 땅이다. 고마운 일이다.


좋은 느낌이 상승 기류를 만나 공기 속으로 퍼진다. 복잡한 머릿속이 개인다. 이성(理性)도 깨어난다. 한 번 호흡할 때마다 조화로운 판단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이 붇는다. 이 기운이 행복해 더 깊게 호흡하고 내쉬며 눈을 감는다. 괭이갈매기 울음소리, 바다 부서지는 소리, 내 숨소리 만이 우주에서 온전하다.


순리를 따른 탓이다. 위쪽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를 거스르지 않았다. 큰 바위를 만났을 때도 돌아갔을 뿐 흐르는 일을 멈추지는 않았다. 간혹 범람할 때면 스스로 잦아 드는 방법을 곧잘 찾았고 익혀뒀다. '지혜롭다'라는 말을 듣곤 했지만 미소로만 답례했다. 말을 의식하면 태양·땅·공기·물이 창조한 행복을 만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기분 삼삼하다. 이런 말이 어떨는지 모르겠지만 '태양 속으로 땅속으로 공기 속으로 물속으로' 빠지는 일을 두려워는 말았으면 싶다. 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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