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SUNY] 사진을 탐하다

Cloud Monet(1840-1926)

by 한봉규 PHILIP
Cloud Monet.JPG Relaxing in the Garden, Argenteuil(1876)


특별한 일 없이 빈둥거리는 데 큰 비가 온다. 이전 같으면 창문 닫으려고 후다닥 부산 떨었을 터. 나는 흐느적 흐느적이다. 씽씽 소리 내는 걸 봐서는 꽤나 화난 모양새다. 마음 좀 풀라고 창문을 열어 놨다. 방안으로 빗방울이 쏜살같이 들어오는 순간 튕긴다. 숨을 곳을 찾는 듯싶다. 목덜미를 낚아 채 여기 있다 이르지 않을 테니 꼭꼭 숨으라 했다. 머리카락 보이지 않도록 말이다. 그렇게 희희낙락하던 중 어떤 생각이 들어 부리나케 서랍 하나를 꺼내 뒤집었다.


산만하게 쏟아진 이것저것들 틈에서 사진첩을 찾았다. 이럴 때 사진첩은 열고 닫은 손 때가 오롯이 배인 가죽에다, 표지에는 이탤릭 체로 ‘Forever’ 뭐 이런 말이 쓰여있어야 줘야 서랍 뒤집은 드라마틱 함이 사는 데 말쑥하다. 하긴 오백여 일 갓 지난 추억은 장 맛으로 치면 설설한 맛이니.


추억의 맛은 그렇지만 그 사람은 여전히 기억 속에서 생생하다. 달콤 쌉싸름하지만 뛰어노는 양이 섹시한 가젤과도 같다. 사진첩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래 그때 그랬지~’랄 만 한 것은 없다. 단 한 장의 사진을 두고 이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느 곳에 사는지 몰랐던 때, 어머님 간병 중에 찍었다는 사진을 볼 수 있었다. 그 날로 난 그 사람을 찾았고, 그 사람은 엉뚱하단 표정을 짓고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야단법석이냐며 나를 맞이해 줬다.


뜨뜻미지근한 그 사람과는 다르게 나는 활활 타고 있었다. 오뉴월 땡볕에게 내기를 걸 만큼 나는 뜨거웠고, 온종일 그 사람 눈동자 속에 나를 가둬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사자처럼 굴었다. 그런 탓에 그이에게 그 사진을 뺏듯이 가져왔다.


그 후로 그 한 장의 사진 얘길 내가 꺼낼 때마다 그 사람은 시큰 둥 했다. 간병하느라고 제때 씻지 않은 모습이 뭐가 그리 좋으냐 나는 흑 역사라는 것이다. 옳거니 기회다 싶어 그럼 광 나는 사진 좀 보여봐라고 콕 찌르면 그럴 일 없다고 단칼에 말을 벤다. 동지 바람도 동강난다. 하지만 곧 ‘이것이 마지막이다’라는 꼬리말을 남기고 그 사람은 내게 사진을 보냈다. 그렇게 그 사람에게서 받은 사진이 사진첩에 한 장 한 장 흰 눈처럼 내려앉아 있다. 이 사실을 그 사람은 모른다.


어떤 사랑이 찰떡처럼 내게 들러붙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미련한 성격도 아닌 데... 하지만 말이다. 뭐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어느 비 오는 날,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을 때, 별안간 큰일 난 듯 요란 떨 일이 있다는 것이 제법 흡족하다. 말은 이리 내어도 실제 마주 보고 사랑하는 날에 비할까 싶다. 천 일 이전 어느 날이라도 좋으니 벼락같이 보고 싶다.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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