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를 동사로 쓰기
글쓰기를 고민하는 후배가 있었다. 글 말미 대부분이 '~했다' '~이다' '~것이다'라는 것이다. 습작생인 내가 위로할 말이 딱히 없었다. 그렇다고 제겨둘 수만도 없다. 곧 내게 닥칠 폭풍우 같아서다. '어떻게 하면 지루하지 않고 생동감 있는 문장을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술술 읽히고 활력 넘치는 글이 될까' 후배 고민 위를 내가 올라탔다.
'명사를 동사처럼 쓰면 나아질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명사는 사물 이름이나 상태를 뜻한다. 움직이지 않는 사물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면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중앙일보 [우리말 바루기] 칼럼(2015. 10. 30.)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우리말 바루기] 동사인 듯 동사 아닌 명사들
'증거'는 어떤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를 이르는 명사다. 여기에 '-하다'를 붙여 동사로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증거를 내세워 증명할 때는 '입증하다'를 쓰면 된다.
접사 '-하다'는 곧잘 마술을 부린다. 일부 명사나 부사 등을 동사나 형용사로 바꿔주는 전성(轉成) 기능이 있다. 문제는 모든 낱말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책하다' '성적하다'와 같은 말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책'이나 '성적'은 '독서'나 '공부'와 비교해 움직임이 없다. '-하다'는 '독서하다' '공부하다'처럼 대체로 동작성이 있는 말에 붙는다.
모든 명사에 '-하다'를 붙여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입증하다' 처럼 예외적인 말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글에 생명을 불어 넣는 방법 하나를 터득했다. 여기에 경향신문 '여적', '모기의 역습' 칼럼(2016. 2. 10.)은 생생한 생동감 완결판을 찾은 기분이었다. 명사에 접사 '-하다'를 붙여 쓴 글맛이 일품이다.
[여적] 모기의 역습
모기는 피부를 찌르면서 혈액의 응고를 막으려고 타액을 주입한다. 이 타액 성분 때문에 가려움을 느낀다. 이때 각종 병원균까지 함께 넣으니 '뼛속까지 독을 주입하는' 해충 소리를 듣는다.
요즘 지가 바이러스를 옮기는 원흉으로 지목된 이집트 숲모기는 1650년쯤 아메리카 대륙으로 왔다. 황열병균을 머금었던 이 모기들은 노예선을 타고 대륙을 건넜다. 생전 처음 이 모기에 물린 선원 중 3분의 1 이상이 죽었다. 가까스로 카리브해에 닿은 생존자들은 뿔뿔이 도망쳤다.
황열병은 삽시간에 신대륙의 모든 항구도시를 초토화했다. 파나마 운하의 운명을 바꾼 것도 역시 이집트 숲모기였다. 파나마 운하는 1881년 프랑스의 페르디낭 드 레셉스가 30억 달러의 투자금을 모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부들이 설치한 오두막과 정원용으로 꾸며놓은 물그릇이 끔찍한 화를 불렀다.
물그릇에서 번식한 모기들이 방충망조차 설치하지 않았던 인부들을 흡혈한 것이다. 총 3만 명이 죽었고, 공사는 중단됐다. 운하 공사는 미국이 마무리했지만, "모기방제 비용이 너무 많았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이렇게 인간의 역사는 '모기와의 전쟁'으로 점철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싸우는 족족 일패도지(一敗塗地)다. 예컨대 1940년대 말 유럽 전역에 엄청난 양의 살충제(DDT)를 뿌려댔다. 사람들은 모기 박멸의 날이 다가왔다고 환호했다. 하지만 독한 살충제를 이겨내고 더욱 강해진 모기들은 다시 사람을 맹렬히 공격했다.
명사에 접사 '~하다'를 붙여 동작성을 드러낸 글은 '주입한다' '느낀다' '도망쳤다' '초토화했다' '시작했다' '환호했다' '공격했다' 는 명사에 접사 '-하다'를 붙여 동사구를 만들었다. '앵~'하는 모기 날개짓에 대한 반응이 생동감 넘친다.
반면에 동작성 없이 사건·사태·과정·정신작용을 '~이다'로 표현한 경우 즉,후배가 고민했던 '~했다' '~이다' '~것이다' 류의 표현은 '이집트 숲모기였다' '흡혈한 것이다' '중단됐다' '과언이 아니다' 정도다.
동사를 그대로 써서 움직임을 묘사한 경우는 '듣는다' '왔다' '건넜다' '죽었다' '불렀다' '시달렸다' '뿌려댔다' 정도다.
생동감 넘치고 활력 있는 글을 쓰려면 이 3가지 동사구 쓰임을 익혀야 한다. 이를테면 텁텁한 글맛을 걷어주고, 글이 지루하지 않다. 활어처럼 펄떡이는 글을 읽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급한 물살을 만나면 급하게 꺽이고, 평온한 수면 위에서는 편안하게 유영하는 글이어야 한다. 명사를 동사구로 쓰는 방법이 내게 생물처럼 뛰는 글을 쓸 수 있다고 귓뜸해줬다. 이 내용을 후배에게 일러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