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은하수510

[은하수510] 칼럼을 필사하는 까닭

Creative by Boris Kustodiev·1878-1927

by 한봉규 PHILIP
보리스 쿠스토디에프. Fair, 1908


그러고 보니 내 글 선생은 '칼럼'이다. 경향신문 ‘여적’·한국일보 ‘김호기 교수의 원근법’·한국경제 ‘천자칼럼’은 2015년부터 지금까지 필사하는 칼럼들이다. 이 3개 칼럼을 처음부터 정해 놓고 시작하진 않았다. 필력을 늘리는데 칼럼만 한 것이 없다고 해서 닥치는 대로 필사를 하다 하루를 다 보낸 적도 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나름 기준이 생겼다.


경향신문 '여적'은 칼럼 제목에 끌려 필사를 시작했다. ‘붓 끝에 남은 먹물’이란 뜻인 여적은 '붓의 고상함이 끝에 남아 한바탕 휘몰아칠 것 같은 기세'라고 한다. 이 말에 끌렸다. 1959년 2월 4일 ‘선거가 다수의 의사를 공정하게 반영할 수 있느냐'라며 당시 자유당을 향해 날카로운 비평을 쏟아낸 일이 있었다. 이승만 정권은 이를 빌미 삼아 경향신문을 폐간했다. 그 유명한 '여적 필화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듬해 4·19 혁명으로 신문은 복간되었다. 휘몰아칠 것 같은 여적의 기세는 여전히 대단하다.


신문 한 장을 쉽게 넘길 수 없는 시대상이 여적이라면, 김호기 교수의 원근법은 그 시대를 꾸려가는 대중들의 면상이다. ‘헬조선’ ‘지옥불반도’ ‘**충’ ‘*포세대’ 어느 것 하나 동심으로 밟을 수 없는 징검다리다. “개도국에서 한 달만 지나면 헬조선이란 말 안 나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부끄럼도 없고 반성도 없는 면상에 아연실색할 따름이었다. 김호기 교수는 이런 한국 사회의 면상을 조목조목 따지고 꼬집는다. 때로는 '어찌해서 부끄럼도 모르는 어른이 되었을까' '공동체는 누가 만들고, 대화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공유와 연대는 왜 중요한가'를 묻는다. 그때마다 가슴이 먹먹하다. 그때마다 공동체의 가치는 무엇일까 생각한다.


언론 역할과 사회 기능에 관한 얘길 듣고 돌아오는 길에는 한국경제 ‘천자칼럼’이 있다. 여러 논설위원 중 고두현 논설위원의 칼럼은 읽을 때마다 소리가 난다. 어떤 날은 선생님처럼 따끔하고, 어느 날은 귀를 쫑긋 세워야 들을 수 있는 별들의 합창 소리 같기도 하다. 간혹 생각의 결이 다를 때도 있다. '소녀상' 칼럼이 그것이다. 읽다가 나도 모르게 “좀 거칠게 따지면 안 됩니까?" 하고 되묻기도 한다.


칼럼은 시정 변화에 이르는 모든 것을 소재로 삼는다. 신문사 권위나 개성을 대중과 공유한다. 사설이 정치 경제 사회 이슈를 논박하는 자리라면, 칼럼은 풍자와 비평으로 모인 광장에서 대화하며 마시는 청량제다. 이 시대 시름과 눈물·아름다움을 외면해선 안된다는 글의 함성이다. 이는 칼럼을 선택하는 기준이고, 필사하는 까닭이다. 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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