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ive by Amy Juud
남을 시기하는 질투심을 남 글 베껴 쓰는 것으로 정화하고 있다. 이 사실이 역설이지만 필사를 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는 신경 안정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분노 조절이 필요한 이가 있다면 필사를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고두현 시인이 '마음 필사'를 출간하기 이전에는 '필사(筆寫)'를 전혀 몰랐다. ‘연필의 질감을 즐기며 한 자 한 자 따라 쓰는 과정 또한 사각사각 재미있다’는 고 시인 인터뷰 한 기사 한 줄은 필사의 세계로 나를 빠져들게 했다. '사각사각'이 뇌를 요동치게 만든 것이다. '사각사각'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소리 같기도 하고, 옹알이 같기도 하다. 말을 배우기 위한 소리가 옹알이인데, 글 배우기 전에 내야 하는 소리가 '사각사각' 같았다.
정희성 시인의 '태백산행'을 '마음 필사'로 따라나섰다. '구시렁구시렁 눈이 내리는 / 산등성 숨차 올라가는데 / 칠십 고개 넘어선 노인네들이 / 여보 젊은이 함께 가지 / 앞지르는 나를 불러 세워 / 올해 몇이냐고 / 쉰일곱이라고 / 그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 조오홀 때다'. 그 말을 들은 시인이 내게도 한 마디, '필사한다고 / 조오홀 때다' 한다.
눈 덮인 태백산을 필사로 따라 오르니 손가락이 뻐근하다. 손에서 연필을 놓은 지 십수 년이 지났으니 손가락이 놀랄 만도 하다. 뇌가 호기심을 갖는다. 몇 편 더 써보라고 한다. '송찬호의 고래의 꿈' '안도현의 땅'까지 내리 2편을 필사했다. 내 마음에서 물을 뿜는 고래 한 마리를 발견했다. 발 딛고 땅을 차오르는 내가 서 있다. 따듯하고 애틋하다. 남을 미워하는 것은 '나를 가두는 일이구나!' '가엾게 여긴 나머지 남을 미워하게 됐구나' 하는 내 마음이 보였다.
서랍 속에 묵혀둔 만년필을 찾았다. 펜촉에 달라붙은 딱지들을 오래도록 거두지 못 했다. 퍽퍽하게 마른 펜촉을 잉크에 담갔다. 잉크를 들이키고 내뿜기를 두세 차례 펜촉이 만족할만한 눈물을 흘린다. 김사인 시인을 찾아 사각사각 잉크를 맘껏 흘렸다. '고맙다 /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