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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봉규 PHILIP Aug 28. 2020

[삼삼한] 태풍과 사과나무

Amedeo Bocchi(1883 - 1976, 이탈리아). Breakfast. 1919




풍속 45, 자동차가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고 했다. 한 단톡방에서는 제주도 소식이라며 가로수가 뽑히고 가드레일은 헐크가 짓밟은 듯한 모습이었다. 창에 테이프를 붙여야 하나 걱정할 즈음 창문 고리만 단단하게 고정하라는 말을 믿고 따랐다.


창밖은 태풍 전 긴장감보다는 여느 때와 같은 고요한 새벽이 단잠 중일뿐이다. 후드득후드득~ 방 안에서 듣는 바람 소리는 처서가 지난 바람으로 치면 이상하지 않다. 간간이 맞은편 아파트 곳곳 창을 후드려패는 듯 했어도 기분 탓일 거다.


심란함이 있어 문밖으로 나섰다. 바람 세기는 집 안에서 느낀 것과 다르게 포크레인 쯤 되는 무게감이 있다. 멀리는 못 가겠고, 건물을 끼고 한 바퀴만 돌아봐야지 했다.


건물 사잇길에 들어서자 바람은 정적과 대치 중이었다. 긴장감과 고요함이 한 치 양보 없이 일합을 어찌 겨룰까 싶은 압박감이 있었다. 사잇길 중앙으로 들어선 발걸음을 우측 길가로 옮겼고, 살금살금 종단 중이다.


가는 길 옆 화단은 엉망진창이었다. 쓰러지고 엉키고 말이다. 제법 큰 나뭇가지 몇몇 군데는 분질러져 있었다. 고양이 밥그릇이 사라졌다. 고양이가 입에 물고 잘 피해 있는 거겠지 싶었다.


발끝에 턱~ 무엇인가 걸린다. 분리 수거품, 한데 너무 가지런하다. 이 난리 통에 의연한 이 모습은 무엇인가. 예상치 않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남은 음식물을 담은 통들이 용도 폐기된 제품 양옆에서 바람막이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런 정렬감 우연이겠지.


여기까지 온 마당에 마냥 해체될 수는 없다는 심정으로 서로 몸을 칭칭 동여매고 어떻게든 버티자고 웅변하고, 먹다 남은 음식물일지언정 아직 쓸 모 있다고 항변하는 듯했다. 그 목소리는 사잇길에 들어섰을 때 압도했던 긴장감과 고요감이 자아내는 삶과는 모양과 색깔, 빛과 느낌이 사뭇 달랐다.


꼭 이렇게까지 의미 부여를 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동트면 사라질 운명인 이들을 태풍은 거세게 밀어 부친듯 했다. 이름도 없이 이대로 사라져도 괜찮으냐고 다그쳤던 것 같다. 남들은 휘청이고 뽑히고 숨기에 급급했을 때, 오직 뚝심으로 이 자리를 지키지 않았느냐고 성도 낸 것 같았다. 음식물 통 겉면 곳곳을 할퀸 자국이 역력했다.


아마 이랬을 것이라고 상상하고 있던 중 불현듯 내일 지구가 망할지언정 나는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이 떠올랐다. 사과나무가 떠 올랐다. 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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