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hard Burlet
늦은 저녁을 먹고 집 밖으로 나왔다. 어떤 종류의 커피를 좋아하는지 몰라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를 샀다. 이렇게라도 하니 마음이 한 결 가볍다. 진작에 이리 할걸 며칠 밤을 뒤적뒤적 잠 못 자고 망설였는가 싶다.
'그 집 앞까지 가는 동안 아무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초대받지 못한 이의 염려는 탓할 거리도 마땅치 않아 두 커피에겐 미안하지만 잔소리 할 수 없게 입막음했다.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라고 했는데, ‘따라리라 따라라’ 기억나는 음으로 비슷한 풍의 노래 여남은 곡을 USB에 담았다. 그립고 애달파 동동거리느니 이렇게라도 하는 편이 후련하다 싶다.
어둑어둑하니 제법 고운 밤으로 들어서고 있다. 그 집 앞으로 향하는 도로의 가로등 불이 마치 꽃처럼 환하다. 이만한 꽃길이 또 있을까. “뭘 좋아하는지 몰라 두 개를 샀는데...” 오늘 첫 마디로 이만하면 안성마춤이다. 기쁘고 안심이다.
그 집 앞에 도착하기 30분 전인 시각, 도로가 막힐 리가 없는데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슬슬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러다 커튼이 닫히면 어쩌나 이 커피는 어쩌나 이 노래는 어쩌나 싶어 클랙슨을 빵빵 누르고 또 눌렀다. 깜빡이도 켜지 않고 끼어드는 차를 추월하면서 창을 내리고 손가락질할뻔했다. 앞 유리창으로 달이 보이면 그 집은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드는 데···, 지금 내겐 한 치의 여유도 없다.
밤은 깊숙이 점점 고요히 흘러가고 내 마음은 빨간 신호등 앞에서 초조하기만 하다. 하나둘셋넷 숫자가 셈을 더할수록 여느 때는 없던 신경질이 아니 빡돌겠다. 파란불이 들어오자마자 악셀을 있는 힘껏 밟았다. 비상 깜빡이를 넣고 내 상태를 알렸다. 다음 신호등의 빨간불에 걸리면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간다. 깊이 더 세게 밟았다. 이제 다음 사거리에서 우회전만 하면 그 집 앞이다. 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