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봉규 PHILIP Jan 27. 2021

[삼삼한] 프랑시즈 퐁주

양초, La bougie

Irene Sheri. Ukraine.

pinterest



양초 

프랑시즈 퐁주 


밤은 때대로 기이한 식물을 되살아나게 해 그 어렴풋한 빛이 가구로 들어찬 방들을 어둠의 덤불로 분해한다. 그 금빛 잎은 흰 대리석 기둥 홈 속 개까만 꼭지에 무심히 붙어있다. 초라한 나방들은 너무 높이 떠서 숲을 흐릿하게 비추는 달보다는 차라리 이것을 공략한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이내 불타고 지쳐 혼미에 가까운 광란의 끝에서 전율한다. 그렇지만 양초는 갑작스레 기묘한 연기를 내며 책 위로 너울거리는 빛들을 던져 책 읽는자의 기운을 북돋아주고, 이윽고 받침대로 기울어져 자신의 자양분 속에서 익사한다.  



방안 불을 끄고 어둠을 만들고 나서야 '기이한 식물'이 촛불 그림자라는 것도 알았다. 촛불이 흔들리며 만드는 어둠과 빛의 경계를 '어둠의 덤불로 분해한다'는 수학적 표현으로 묘사했다. 프랑시즈 퐁주(Francis Ponge, 1899~1988). 프랑스 아이들이 가장 닯고 싶은 시인으로 뽑을 만큼 존경 받는 시인이다. 그는 사물의 소리 의미(signifie:시니피에)보다 소리 그 자체(signifiant:시니피앙)를 묘사한다. 감정을 철저하게 제거하는 시작법으로 쓴 시가 바로 양초이다.¹    


양초는 불을 무기로 나방 광기에 대응한다. 그렇다고 나방을 어쩌지는 못한다. 날개짓에 흔들릴 뿐이다. 전율은 광기의 마지막 숨이었다. 광기를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묵묵함뿐이라고 양초는 윙크를 보낸다. 그제서야 양초가 광기를 참았던 연유를 알았다. 방안에 가득했던 기이한 식물 덤불을 헤치고 가야할 이의 마음에 용기를 북돋운 것이다. 북극성을 방향타 삼았던 아라비아 상인의 지혜를 양초는 일러주고 싶었던 것이다. 말을 할 수 없으니 자기 몸을 녹이는 고통을 참았던 것이다.  


진은영 시인은 촛불을 사이에 두고 나방은 광기로 달려들고, 시인 퐁주는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이 둘 차이는 '간격' 때문이라는 것. 너무 가까이 가면 불에 타고, 너무 멀리 떨어지면 표정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적정거리'를 찾아내야 빛과 용기를 얻는다는 것이다.²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경영자들이 인재(人材)를 등용할 때 요긴하게 쓰는 말이다. 너무 가까우면 사람은 광기가 들고, 너무 멀면 사람은 협잡(俠雜)을 한다. '산은 둘러봐야 깊은 줄 알고 거리를 두고 봐야 위대함을 안다'³는 라마 아나가리카 고빈다 수도승 깨우침이 양초가 내린 맑은 물과 같다. 인사철 경영자들이 산에 오르는 이유가 아닐까.  



¹ 정승옥(2007년 가을), "허만하가 읽은 프랑시즈 퐁주(1)", 語文硏究 제35권 제3호, p.217~218.

² 진은영(2016.01.07), <진은영의 아침을 여는 시>, http://www.hankookilbo.com/v/002494ae05674b81ba5f2a22858dbf6f  

³ 천지인(2010.04.21), <材夫가 적어논 글>, http://blog.daum.net/qqqw1/14827560


*프랑시즈 퐁주(Francis Ponge, 1899~1988)프랑스 몽펠리에서 1899년에 태어났다. '롤랑 마르스'라는 필명으로 레지스탕스 운동을 했다고 한다. 1942년 '사물의 편(Le parti pris des choses)'은 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프랑스 시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으로서 조국을 언어 사제로 여긴다. 작가가 지녀야 할 시민적 책임감은 "예술은 이념에 대한 단호한 불복종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고'고 했다. 예술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프랑시즈퐁주 #양초 #진은영시인 #아침을여는시 

매거진의 이전글 [삼삼한] 출간 선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