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작가. 안부. 30호.
[삼삼한] 프랑시즈 퐁주 글은 2016년 쓴 글이다. 지금 쓰는 이 글은 2018년 썼던 글에서 격조사 '의'를 교열한 것이다. 당시 '아침을 여는 시' 칼럼에서 진은영 시인은 프랑시즈 퐁주 시 '양초'를 소개했다. 두 시인 지성과 감성에 감정 이입한 탓에 양초를 글 소재 삼은 것이다. ‘아라비아 상인'과 '수도승' 잠언을 빌었고, 마지막은 인사철을 맞이한 CEO 심경까지 끌어다 붙였다.
여적 칼럼 구조를 모방한 탓일까. 양초로 시작한 글이 CEO 심경까지 이르는 과정이 마치 쌀 씻고 난 뒤 부유물처럼 둥둥 떠 있는 듯하다. 글과 글 사이를 애써 이으려는 노력은 갸륵하다. 하지만 글을 쓰는 나를 숨기고 무조건 객관화하려는 태도는 좋지 않아 보인다. 박신영 선생님이 깨우쳐 주신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내가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이 내면에 들어온 까닭과 배경을 들어온 후 내가 겪는 감정과 이성이 불화와 조화를 이뤄내는 과정이 없는 글은 공감도 의미도 되새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2016년에 쓴 글은 글감으로는 훌륭했으나 글 짓는 내 서투른 박음질로 누더기 옷을 만든 꼴이다. 누더기도 잘 만하면 예술품이 된다 하던데, 내면을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 담금질이 덜 된 심경은 불만을 토로하는 것에 불과했다. 다행인 것은 겉멋 부리지는 않아 '악~' 소린 나지 않았다.
프랑시즈 퐁주는 시 양초로 그 시를 소개한 진은영 시인은 시 감수성으로 박신영 선생께서는 인연이란 글로 내게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이제야 깨달았다. 내면 담금질은 속도라기보다 정성이고, 담금질은 내 삶을 오롯이 담아야 소리가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 소리로 글을 지을 때 글 울림도 맑고 밝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두려워 도망치지 말하는 진은영 시인 한 문장은 글 담글 질 할 때 쓰라 한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