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원 다섯 팩 하던 반찬이 해가 바뀌면서 네 팩으로 줄었다. 하나 늘리는 건 쉽지만, 늘였다가 줄이는 일은 곤혹스럽다. 다섯 팩 일 때 멸치볶음·나물 무침·생선가스·낙지 젓갈·오징어 진미채는 내 입 맛집이었다.
여기서 하나를 줄여야 하는 오늘 저녁, 젓갈을 빼자니 입맛 없을 때 이 만한 밥도둑이 없고, 생선가스를 빼자니 소스 감칠맛이 나를 놓지 않고, 나물 무침을 빼자니 허전하고, 멸치볶음을 빼자니 요즘 칼슘이 부족한 듯도 해서 오징어 진미채를 빼기로 했다. 달고 짠 진미채 맛은 여러모로 겹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10 분 후 나는 생선가스를 오징어 진미채로 바꿨다. '빨갛고 길고 딱딱한데 물렁한 그것'에 얽힌 한 페친 분과 그 아들 간 추억담이 '입맛보다는 사는 맛'이지 싶어서다.
반찬 가게로 다시 돌아갔다. '빨갛고 길고 딱딱한데 물렁한 거 그거 있죠?'라고 물었다. 주인장은 '웬 뚱딴지같은 소리!'라는 표정을 짓는다. 오징어 진미채를 풀어 말한 아들내미 사장을 알아듣지 못한 그분 표정이 딱 주인장 같을 것이란 상상에 웃음이 절로 났다. '여깄네요. 오징어 진미채!' 그때야 '호호'하며 주인장도 웃는다.
밥 먹는 일은 때론 귀찮다. 입맛 없으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만큼 속도 탄다. 한데 사는 맛은 입맛과 달라, 밥때 맞추려고 집은 진미채에 이란 사연이 깃들면 반찬은 식탁 위 여행지가 된다. 젓가락으로 진미채를 집을 때마다 이 얘기 등장인물 세 분 얼굴 표정이 여행지에서 만나 금세 친해진 사람 같기 때문이다. 애끓는 일이 많은 일상에 이런 여행은 망설일 이유가 하나 없다. 차고 넘칠수록 이 만한 보약 역시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