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지현 작가.달꽃.2018.
밤이 들었다. 빗장을 풀고 밖으로 나왔다.
십수 년을 몇 곱절한 아름드리나무가 내 앞이고, 그 오른쪽이 내가 있는 밤의 백사장으로 들어오는 길이다. 이 길을 들고났던 숱한 발자국이 남겼을 아우성조차 고요하다.
이쯤 하면 풀벌레는 속 끓는 소리를 낼법한데 이마저도 얌전하니 한 발 내딛는 일을 조심조심할 밖에. 한데 밤이 뿌려 놓은 은빛 미사 가루는 엄지발가락 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나갔다. 파도가 들어왔다 나갔다 거짓말 같지만 철써덕철써덕 소리도 났다.
이게 뭐라고 여태 기다렸는지 달은 하현이 됐고, 알맞게 붉으스럼도 하다.
자기애(自己愛·Narcissism)를 쾌감 하기에 안성맞춤이라 한 걸음 뗄 때마다 그 사람 노래를 듣는다. 웃음소리를 듣는다. 내 손가락 하나 쥐고 있는 갓난 아기 손을 보는 듯 어떤 못난 짓을 해도 이 손만은 놓치고 싶지 않다. 그 사람 살결에 닿은 내 손을 머뭇거리고 싶지도 않다.
지금부터 차 오르는 이 기운을 그 사람에게 보낼 궁리 시작하는
사랑이 온전한 내 밤의 백사장에 달 꽃이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