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은하수510

[은하수510] 흐뭇하다

신경질.어이없다.뜬금없다.생트집하다.기가막히다.엉뚱하다

by 한봉규 PHILIP


어떤 일이 있었다. 이를테면 내가 하지 않은 일을 A는 내가 했다 하면서 그 진위 여부를 내게 물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이 말을 들으면서 너무 뜬금없고 어이없었다. 어디서 생트집인가도 싶었다. 이 일은 잠시 동안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뒤끝은 개운치 않았다. 신경질이 났다.


신경질은 '신경이 너무 예민하거나 섬약하여 사소한 일에도 자극되어 곧잘 흥분하는 성질 또는 체질'이라고 한다. 이 말대로라면 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내 성질에서 기인한다는 것인데 이 뜻이라면 동의할 수 없다. 되레 A 말을 들으면서 떠올랐던 뜬금없다거나 어이없다 또는 생트집 등이 내 감정 상태를 비교적 잘 표현한 말 같았다. 한데 이 말 뜻이 정말 내 감정을 잘 표현한 말인지가 궁금했다.


뜬금없다: 갑작스럽고도 엉뚱하다.
어이없다: 일이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히는 듯하다.
생트집하다: 아무 까닭 없이 트집을 잡다
트집잡다: 조그만 흠집을 들추어내거나 없는 흠집을 만들다.


A가 촉발한 일은 갑작스럽고 뜻밖인 것은 사실이다. A에게는 어떤 까닭이 있었기에 이 사단이 난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모른 채 말이다. 결국 A가 중히여긴 그것은 지레짐작에 불과했다. 오해가 없어 다행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기가 막히고 엉뚱한 일이었다.


기가 막힌다: 어떠한 일이 놀랍거나 언짢아서 어이없다.


A가 일으킨 이 일은 분명 언짢다. 마음에 들지 않았고 기분도 좋지 않다. 이상한 점은 이것이 내 감정 상태를 온전히 표현한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인가가 더 있어 보였다. 그 무엇인가를 찾았고 마침내 엉뚱하다는 뜻풀이에 담긴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엉뚱하다: 말이나 행동이 분수에 맞지 아니하게 지나치다.


나는 A 행동이 지나치고 도리에 맞지 않다고 느끼고 판단한 것이다. 신경질은 이 뜻을 함축한 말이었다. A는 그 정도는 내게 따져 물을 수 있는 관계라고 여겼고 나는 A가 그런 것을 내게 묻고 내가 답할 만큼 신뢰 수준은 아니라는 것을 이번 일로 나는 알아차린 것이다.


오해는 일찍 감치 풀었지만 숙제가 남았다. A가 그런 수준으로 나를 대할 빌미를 내가 제공했을 점을 회고하고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A를 대하는 내 신뢰 수준을 돌아보고 재정립해야 한다는 점이다. 새롭게 얻은 점도 있다.


이 같은 사건을 겪을 때 생긴 감정을 진정하고 해소하는 일은 관계 악화를 막는 초기 대응임은 분명하다. 한데 이 글을 쓰면서 든 생각은 그것은 감정 표피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겉 감정은 쉽게 진정할 수 있지만 속 감정은 그렇지 않다. 해서 자기감정을 인식하는 일은 이 껍질을 벗기고 드러난 속살 표정을 읽을 때 비로소 자기 성찰할 수 있다.


그 속 표정을 읽는 방식으로 감정 단어 뜻풀이를 꼬리 물기 하는 방식이 내가 우연히 얻어 뜻밖의 성과를 올렸다. 이 방식이 옳고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다 신선했을 뿐이다. 해서 이 방식으로 내 감정 인식을 해 볼까 한다. 가치 있고 재미있는 내 일을 찾은 듯 흐뭇하다.


흐뭇하다: 마음에 흡족하여 매우 만족스럽다.


#신경질 #어이없다 #뜬금없다 #생트집하다 #기가막히다 #엉뚱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은하수510] 첫 문장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