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 떼기가 좀처럼 풀리지 않을 때면 마음이 심란하다. 원고지 쓰기를 하면 꾸깃꾸깃하고 휙 던져버렸을텐데 여의치 않다. 그 대신으로 그림을 찾아 보게 됐다. '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그림을 발견하면 심란함이 사라진다. 한데 글 읽을 때 내는 '와~!' 소리와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
글은 읽으면서 작가와 동행을 한다. 가끔은 작가에게 결투를 신청하기도 한다. 거절당하기 일쑤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칼을 가는 마음으로 읽은 적도 있다. 하지만 글을 다 읽은 후에 모진 마음이 부끄러웠다. 칼 갈 때마다 실은 내 마음 녹(綠)을 벗겨냈기 때문이다.
그림은, 그림은 달랐다. 화가는 쓸고 밀고 찍는 붓질을 반복하며 마음의 녹을 녹였다. 차정숙 작가의 '내 마음의 노래' 연작은 그렇게 씻어낸 녹의 자리를 '색(色)'으로 입혀 글을 쓰는 작가처럼 보였다.
게다가 “내가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 가끔은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점 하나하나에 시름과 고난이 사라지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것도 그 시간과 바꾸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만큼 그런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가슴 설레고 즐거워진다."라는 차 화가 독백은 달성하기 힘든 스트레치 목표(stretch Goal)보다는 '어떤 것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소중한 시간'을 들이는 것이 '첫 문장 목표'로 삼기에 알맞다고 귀띔주는 듯하다.
한 점 한 점 찍어내는 고난의 시간을 들여야 설레는 '색(色)'을 만들어 내듯, '내 마음의 노래' 연작에는 '색(色)'의 설렘이 가득하다. 첫 문장도 시름의 시간을 들여야 설레이고 글에는 녹이 슬지 않는다. 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