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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봉규 PHILIP Aug 24. 2021

[삼삼한] 메이크업



여름이 부들부들 떨만 한 비가 내렸다. 비 그치면 계절 바뀌겠지 하며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갔다. 사방팔방이 방음벽인 줄 알고 왔는데, 인스타그램 갬성이 넘치는 곳이었다. 듣자 하니 삼삼오오 이런 공간을 빌려 파티도 하고 Look Book 촬영을 한다는 것이다. 그 활동은 모두 SNS에 포스팅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코로나 대유행 시기 스트레스 푸는 방식이 꽤 흥미로웠다. 그런 공간에서 나는 온라인 회의 영상 촬영을 한다. SNS에 포스팅할 갬성 사진이 없을 것 같아 속 상도하다.


메이크업 박스가 삼단으로 촤촤작 소리를 내며 열렸다. 어림짐작해도 백여 가지는 족히 넘을 메이크업 도구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 많은 브러시 중에서 가장 아끼는 것은 몇 년 됐어요?" 인사말 다음으로 건넨 내 질문이 엉뚱했는지 좀처럼 들은 적 없는 얘기여서 그런지 메이크업 아티스트 분은 "네?"라고 짤막한 답변을 놓고는 곧바로 일을 시작한다. 잠시 연예인 기분을 만끽하라는 작가분 말씀은 듣기 좋았다.


메이크업 베이스를 바르고 컨실러로 감출 건 감추는 손놀림이 스무스하다. 파우치를 볼에 대고 눈썹을 다듬고 눈썹을 그린다. 잠시 후 눈을 떴을 때 내 모습을 상상하니 뭔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리모트워크 시대를 맞이하면서 내 얼굴을 이처럼 자주 많이 대면한 적이 없었다. 한데 그때마다 낯설었고, 주름이 세월만큼 고랑 고랑으로 이어진 흔적을 발견했을 때 열심히 산 훈장이라고 애써 말했지만 솔직히 애잔했다.


입술에 립글로스를 바르고 나서야 메이크업은 끝났다. 거울   모습을 빤히 바라보면서 남자는 역시 헤어스타일이지라는 말을 실감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애잔하다며 넋두리한  모습은 사라졌고,  자리에 화이팅을 외치고 있는 내가 있었다. 이런 마술이 따로 없다.  모습이라면  스튜디오 공간 곳곳을 누비며 갬성 사진을 찍고 SNS 올릴만하겠다 .


하지만 현실은 뮤랄과 미로를 활용한 온라인 회의 동영상 촬영이다. 10분 남짓한 영상 열 개를 만드는 일이다. 산술적으로 100분이면 끝날 테지만, 7시간 공들인 끝에 마쳤다. 갬성 사진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고, SNS에 포스팅할 거리도 없었다. 촬영 내내 반복을 반복할 뿐이었다. 입에 단내가 날 때쯤 마친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였고, 부들부들 내리는 비가 되레 시원하고 홀가분했다. 3개월쯤 후 메이크업 한 내 모습을 누군가는 듣고 보면서 애쓰셨네라고 한 마디 남겨 주신다면 이런 것이 참 고마운 일이다.



#온라인회의촬영 #메이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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