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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한엄마 Oct 21. 2021

영국에서의 해넘이

7기 신나는 글쓰기(12)

 지인분의 어머니께서 심장 이식 수술을 급하게 받으셨다고 한다. 기쁘게도 내 혈액으로 어머니의 건강을 도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켜 헌혈의 집으로 향했다. 혈액을 받으실 어머니의 병원과 환자 번호를 적은 후에 문진표를 작성했다. 에이즈? 결핵? 등등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였고 내가 출산을 한 지도 벌써 4년이 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상한 구절이 있었다.


 “영국에서 3개월 이상 거주하셨습니까?”


 미국도 아니고 아프리카도 아니고 요즘 그 유명한 우한지역도 아니다. 영국? 내가 지냈던 곳? 거주했다고 하니 바로 헌혈 불가가 떴다. 너무 황당했다. 간호사분에게 도대체 왜 그런지 물었다. 영국에는 인간 광우병이 있어서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베일’에 나오는 “개가 죽었어.” 그 구문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광우병 걸린 개가 사람을 물었는데 사람이 죽지 않고 개가 죽었다는. 그게 다 피 때문인가? 참으로. 영국에 갈 때는 폐에 이상이 없어야 한다며 폐사진을 요구하더니 또 돌아올 때는 피를 줄 수도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영국은 찜질방 같다. 공기가 대한민국과 다르다. 근처 도시인 파리와도 다른 것 같다. 공기가 사람을 짓누르는 느낌이다. 더 북반구에서는 더 극단적이라고 하는데 영국의 극단적인 일조량은 이 무거운 공기와 함께 정신적으로 버티기 굉장히 어렵다. 여름에는 밤 9시까지 해가 떠 있지만 지금 이맘때인 10월부터는 눈에 띄게 일조량이 줄어든다. 크리스마스인 12월, 한국의 동지쯤 되는 시기에는 오후 3시쯤에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해 저무는 모습을 아주 일찍 볼 수 있다. 그 이후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과 무거운 공기 그리고 음침함이 주변을 감싼다. 마치 지상에서 수영하는 느낌으로 겨울을 버틴다. 그래서 왕좌의 게임의 ‘Winter is coming’이 정말 비장하게 들리는 순간이 온다.


 해 지는 게 매정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해넘이 순간만은 너무도 아름다웠던 영국이었다. 아이 학교가 끝날 때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시간은 3시. 이제 어두움이 너는 덮칠 거야. 그래도 괜찮아. 네 마음을 대신 밝혀보렴. 그렇게 너와 더 가까워지는 시간이야. 그렇게 해넘이 때 나를 위로해 주는 듯했다. 구름이 많고 비가 많은 그곳. 어두운 공기가 나를 짓누르는 듯한 곳. 그때의 해넘이가 정말 많이 생각난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아름다운 해넘이를 보고 싶다면 일단 지금 있는 자리에서 어디론가 떠나야죠. 보기 위해서는 지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는 얘기입니다.

오늘은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봐요. 카메라를 들고 해 저무는 시간에 적절한 장소로 이동해 보는 것도 좋아요. 포인트를 잘 잡고 잠시 사색에 빠져봅시다. 운이 좋다면 인생의 사진을 건질 수도 있겠죠. 사진보다는 해넘이를 보면서 드는 생각을 글로 써봅시다. 어떤 생각이든 말이에요.

참고 문장)

「나는 해넘이가 정말 좋아. 지금 해넘이를 보러 가요….」 「하지만 기다려야 하는데….」 「기다리다니, 뭘?」 「해가 지기를 기다려야지.」


「아저씨도 알 거야…. 그렇게도 슬플 때는 누구나 해가 저무는 게 보고 싶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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