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똥. 우리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창조의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은 바로 배변을 마음대로 하고 그 나온 배설물을 볼 때라고 한다. 마음대로 나온 그런 게 아니고 내가 조절해서 배출한 그런 것. 어쩌면 글도 그런 게 아닐까. 가끔 맞춤법이라는 대한민국 국립국어원이 정한 표준말에 맞지 않는다거나 사회 계층에서 쓰는 말이 아니거나 한 게 아니라도 글이 감정의 배출구가 된 이상 우리의 창작물이요, 내 고유의 생각에서 나온 덩어리이다. 똥과 글을 차이점은 똥은 어쩔 수 없이 보지만 글은 억지로 읽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다.
글과 똥
나는 하루키 소설이 대단하다고 얘기를 들었을 때 그의 책을 읽었다. 그렇기에 나에게 그는 똥에 지나지 않았다. 배설물이네. 나를 포함한 독자들은 마케팅의 엄청난 피해자다. 나는 그렇게 섣부르게 생각했다. 그 사람을 제대로 알기 전에는 섣부르게 말하지 말 것. 하루키를 통해서 나는 또다시 배운다.
후회 할 짓을 하기 전에 좀 더 늦게 행동할 것
독서 모임에서 리더를 맡았다. 리더라도 나는 역시나 겨우 도리를 하는 정도의 버티기 리더였다. 진정 좋은 리더는 없는 듯 있는 것이라는 내 무의식적 기준이 작용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 와중에 독서 모임을 맡은 도서관 부서 주무관님 부탁이 내게 너무 딱딱하고 정형화되게 느껴졌다. 상처가 되고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예전에 리더를 맡았던 분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서 직원분에게 상처받은 얘기를 하니 전임 리더님은 먼저 내 마음에 대해 위로해 주셨다. 그리곤 몰랐던 정보 하나를 주셨다. 직원 분이 암투병을 하시고 복직을 하셨다고 한다. 직접 보면 마음 따듯한 분이시라며. 아, 큰일이 날 뻔 했구나. 섣부르게 사람을 단정지을 뻔 했다. 어떤 작가에 대해서도 작품에 대해서도 그리고 세상 많은 일에 대해서 그렇게 함부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내가 그렇다.
이 책은 하루키의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이은 환상적인 이야기 ‘1973년의 핀볼’에 대한 이야기다. 앞선 소설에 나온 인물이 또 나오기도 하고 새로운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 예전 이야기처럼 진짜 있을듯한 가짜 이야기도 있어서 참 애매모호하다. 진짜인가 가짜인가 어차피 가짜라는 소설인데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참 쓸 데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다 자신의 시스템에 맞춰 살아간다. 그것이 내 것과 지나치게 다르면 화가 치밀고, 지나치게 비슷하면 슬퍼진다. 그뿐이다.”(78)
별자리 성격으로 가자면 이 책에서는 태양, 달, 수성, 천왕성, 명왕성은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토성과 금성이 나온다. 참고로 하루키의 별자리 주인 행성은 토성이고 나는 금성이다. 금성 주변에 나는 토성도 같이 있다. 태양도 있고 수성도 있다. 그래서 그런가. 하루키 글은 지나치게 나와 달랐다. 그래서 화가 났던 것 같다.
그의 글은 자유를 지향하지만 매우 형식화되어 있다. 고뇌하지만 딱히 답은 없다. 그 자리에 그대로 묵묵히 비를 맞고 있는 그런 느낌이다. 나는 또 그런 걸 참지 못한다. 나는 구름이 뒤덮힌 행성을 갖고 있는 성격이라 그런가 태양을 피하기 위해 구름으로 쌓아놓고 내 마음을 속이기 위해 웃음과 예의로 가장하기도 한다. 하루키처럼 이렇게 참고 묵묵히 뭘 하는 것은 나와 맞지 않아 화가 났는지도 모르겠다. 염소자리는 끝까지 고뇌하고 버티고 성취해버리는 데 온 쾌감을 느끼는 별자리다. 금성의 오늘만 사는 ‘카르페 디엠’의 정반대에 서 있는 성격이다.
“나는 이상한 별자리에서 태어났어. 그래서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반드시 손에 넣었어. 하지만 뭔가를 손에 넣을 때마다 다른 뭔가를 짓밟아왔지.”(133)
그는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얻으면 반드시 그 얻음으로 인해 고통받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된다. 그럼으로 그는 자신의 본능인 토성 기운을 죽이기로 하고 오늘만 사는 자유로운 영혼, 자신을 구름이라는 얇은 막으로 꾸미는 금성을 흉내내기로 한다. 어쩌면 핀볼을 욕망하는 그 마음 이전에 쌍둥이가 태어난 건 그런 정반대의 성향의 내가 상대방으로 바뀌어 나타난 게 아닌가 싶다. 끝까지 욕망하여 성취하는 사람과 그때그때 쾌락으로 만족하는 삶. 그는 결국 핀볼을 욕망함으로써 토성의 기운을 없앨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비로소 그는 다른 인격이 되고자 하는 그 노력이 허망하다는 걸 깨달아 버린다. 그렇게 쌍둥이는 떠난다.
1969년 그는 자유롭게 살기로, 예전과 다르게 살기로 다짐하지만 결국 그 다짐조차도 토성적인 것이었다. 아무리 자신의 원래 본성을 없애버리려고 노력하더라도 그건 가능하지 않다. 결국 다시 그는 자신이 가질 수 밖에 없는 본능인 토성을 끌어 안아버리는 1973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는 아마 그렇게 자신의 토성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자신답게 글을 쓰기로 결심했던 듯 하다.
금성(비너스)과 토성(쌔턴)
너무도 토성답게 써서 금성인 나는 불쾌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럼으로 그가 자신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이 알 수 없는 말이 계속되지만 읽게 되고 결국 2시간이 안 되는 시간에 다 읽는 독자가 되어버리는 나 스스로를 신기해하는 그런 책 한 권을 뚝딱 만들어버린다.
주방에서 후루룩~썼다는 소설, 1973년의 핀볼
이 책은 너무도 쉽게 써졌다고 한다. 그래서 쉽게 읽혀진 것일까? 무슨 뜻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때 그때의 상황에 대한 재치있는 묘사와 생각이 재밌어서 따라 읽어버렸다. 나오코는 나왔다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화자는 일하는 걸 얘기했다가 뜬금없이 왜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지, 쥐는 왜 갑자기 등장해서 여자친구 이야기를 하는지 불쑥불쑥 계속 불청객들이 등장하고 온갖 샛길로 빠져버리는 이야기들이지만 다 읽은 지금 신기하게도 하루키가 뭘 얘기하고 싶었는지 대충 알 것 같다. 알지 못하게 숨기고 싶었지만 알았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을까? 그는 그렇게 자신의 작가 인생을 조금씩 차곡차곡 괴로움 속에 쌓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두 번째의 하루키를 발견했다. 그 다음은 양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 내가 화성 이야기를 빠뜨렸구나. 양은 순한 존재가 결코 아니란 것. 그걸 얘기한 건가? 그는 분명 태양계 행성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더 나아가 별자리 성격에 대한 운명론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다음을 따라 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