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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한엄마 Nov 07. 2022

#7.혼돈에 대하여

철학으로 '변'하여 다시 '태'어나는 40대 아줌마 이야기

들어가며


 며칠 전 평소와 같은 날이었다. 할로윈이라 아이들이 학원에서 사탕을 받아온 것이 전부였다. 자고 일어나니 현실에서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친정에서 가까워 부담 없이 오갔던 이태원 흔한 골목에서 무려 300여 명의 사람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는 내용이었다. 친정 쪽 이웃은 난리가 났다. 그들의 자녀 친구들의 부고가 끊임없이 들려온다고 한다.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누가 밀었냐, 누가 잘못했냐, 누가 책임져야 하냐, 할로윈이라는 서양 행사, 악마, 잘못된 행사 등등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오늘같이 할 철학자들 또한 그런 혼돈의 시대에서 생각을 정립한 학자들이다. 이들은 세계 대전을 지나온 인물들이다. 그러니 그들의 사상과 철학 안에 전쟁의 혼돈을 떨어뜨리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 귀족 영국인인 철학자 러셀은 끊임없이 사유하듯 결혼과 사랑도 한 사람이었다. 그의 제자인 비트겐슈타인 또한 재벌 막내아들에 엄청난 천재성을 가졌으나 6년을 시골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지내고 배려없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한 특이한 사람이었다. 후설은 상황에 따라 항상 변한다는 항상 변한다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은 현상학을 내세운 학자다. 하이데거는 독일의 전쟁 소용돌이 안에서 나치에 협력한다는 의심도 받았던 학자다. 그는 ‘존재와 시간’이라는 독일사람도 이해하기 힘든 독일어 철학서를 통해 큰 업적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프랑스의 샤르트르는 계약 결혼을 통해 기존 사회와 다른 삶을 영위하며 문학을 버무린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철학 논거를 대중에게 알린 학자다.


1.


 2010년, 세쌍둥이 임신으로 한 아이를 포기한 후 쌍둥이 품기로  했다. 두 달 뒤 락스 냄새 섞인 꽤 많은 양의 분비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하혈 수준이 되어서야 병원에 입원을 했다. 한 주 내내 움직임 없이 오로지 태아를 지킨다는 일념으로 누워만 있어야만 했다. 결국 한 생명은 심정지가 왔고 한 아이는 양수가 없어 더는 임신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한 아이는 산 채로 15주에 세상에 나와야 했다. 그렇게 나는 퇴원을 했다.

 러셀은 왜 자신이 기독교인이 아닌지, 신을 믿지 않는지, 자유로운지 생각한 사람이다. 나 또한 이때만큼 러셀의 사유에 동참하고 싶었던 때가 아닌가 싶다. 화가 났다. 뭔지 모르는 분노가 내 안을 지배했다. 신이 있다면 왜 줬다 뺐었을까? 내 선택에 대해 죄책감을 주고 싶었던 것인가? 끊임없이 고뇌하고 힘들어했던 시간이었다. 난 러셀처럼 중단하지 않았다. 임신이 가능한 주수가 되어 바로 병원에 갔다. 어떻게 하면 임신을 할 수 있을지 도와달라 했다.     


2.


 그렇게 2011년, 나는 바로 다시 임신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첫 아이를 키우고 돌이 지나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둘째가 온 걸 알게 되었다. 첫째는 유치원에, 둘째는 어린이집에 잘 다니고 이제 나만의 자유로운 시간이 확보됐다고 생각했을 때쯤 셋째까지 찾아왔다. 예측할 수 없는 전개였다. 내가 계획했던 대로 이루어진 게 아니다. 그냥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 현상학적인 일이 벌어졌다.

 빅데이터라는 시스템에서도 내 상황은 예측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난 세 명을 한꺼번에 키우는 게 힘들다며 거부했다.결국 세 명의 아이를 키워야 하는 내 운명을 거부할 수 없었나 보다. 그렇게 나는 세 아이 엄마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3.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이라는 난해한 책을 내놨다. 독일책임에도 언제 독일어 번역본이 나오냐고 농담을 할 정도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도 짧게 줄여보자면 미래에 본인이 소멸할 것을 인식할 때야 현실의 자신에 대해 깨달을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나 또한 결국에는 아이 셋을 책임질 것이란 걸 인식한 후에야 현실의 육아에 대해 인정할 수 있었다. 존재를 인정하니 세상이 보였다. 힘들지만 좋은 점도 있다. 한 아이에게 집착하고 강압을 하지 않는다. 사랑은 늘지만 한 아이당 가질 수 있는 시간은 늘지 않는다. 특히 혼자 생각하고 사유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어버렸다. 내가 세 아이를 인정했듯 곧 이들도 언젠가 독립할 미래를 그리니 현실에서 세 아이를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 존재의 현실적 실행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4.


 샤르트르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했다. 전쟁의 시대에서 전쟁으로 국가의 현실 이전에 자신 개인이 생각하는 삶을 중요시 여긴 것이다. 시대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자신을 통해 시대가 변화되기 원했다. 이처럼 나도 전쟁 같은 육아 현실(본질)에서 내 마음을 보는 이 글 쓰는 행위(실존)을 앞세우려 노력했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마감 시간을 넘기고 한참 지나서야 이렇게 몇 글자를 쓸 짬이 생겼다. 그래도 샤르트르의 강렬한 철학 논거 하나가 내게 좌절하지 않고 글을 쓰게 하는 힘을 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5.


  비트겐슈타인은 말한다. <논리철학 논고>를 통해 그는 언어로 말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말이 아닌 경험을 통해서야 가능한 그 이상이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정밀하게 상황을 알려주려는 언어 표현을 만들기 위한 건 무의미하며 그렇기에 거친 경험을 통해서야만 깨우치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가정을 만들지 못한 그는 육아에 버금가는 일을 하기로 결정한게 아닌가 싶다. 외압으로 쫓겨나기 전까지 무려 수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를 헸다.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는 일만큼 언어를 넘어선 깨우침을 주는 경험이다. 그렇게 비트겐슈타인이 자신의 인생 항로를 통해 내게 뭔가를 알려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가며


 육아는 전쟁과도 같다. 한 아이의 출생부터 독립까지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 할로윈에서 친정 이웃의 갓 독립할 나이의 20대와 호기심에 가 봤던 10대 아이들이 순식간에 유명을 달리했다. 이런 일을 보면 부모로서 세상이 더욱 불안하고 두렵다. 전쟁을 지나온 철학자들의 주장 속에 이런 부모의 마음이 같이 겹쳐 보였다. 그렇기에 그들의 난해하고도 혼란스러운 그 이념들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건 다 내 삶을 관통한 그들과의 접점 때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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